사실상 난자 매매 허용 … 여성 인권·건강 위협
개정법률, 난자 제공자 대한 실비 보상 조항 추가
배아세포 연구범위 ‘일반 질병치료’로 확대 논란
여성 몸 도구화·가난한 여성 인권 무시 등 부작용 우려
올바른 생명 의식·자료 제공할 신자 전문가 활동 절실
일부 조항이 수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개악(改惡)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이 5월 1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안명옥 주교)는 5월 16일 ‘개악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생명윤리법 개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 전면적인 재개정에 나설 뜻을 밝혔다. 또 여성계와도 연대해 생명윤리와 여성 인권, 건강권 등을 무시한 악법의 저지 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첫단추를 잘못 꿴 생명윤리법은 제정 준비단계에서부터 제정, 발효, 시행 이후 지금까지 우리사회 생명윤리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계와 여성·시민단체 등은 생명윤리법 개정을 다각도로 추진해왔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생명윤리법 개정을 위해 분야별 연구활동과 대사회 메시지 발표, 세미나, 심포지엄 등을 통해 올바른 법개정 방향을 밝히고 정부 움직임 등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현재 기존 법보다 더욱 심각한 독소조항을 포함한 일부 개정 대안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파문이 예상된다.
생명윤리법 개정 과정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생명윤리법 개정안은 지난 2월 26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라는 이름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이후 5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임시국회에서 졸속 통과됐다.
이 대안법률은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를 허용할 뿐 아니라, 배아줄기세포연구 범위를 도리어 확대해 생명윤리법이 아니라 생명육성공학법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특히 난자 제공자에 대해 실비보상을 허용해 여성의 인권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이다.
생명윤리법은 지난 2005년 1월 1일부터 발효됐다. 제정 준비단계에서부터 사회각계와 불협화음을 일으켰던 이 생명윤리법은 무엇보다 인간생명을 직접적으로 훼손, 파괴하는 독소조항들을 담고 있어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켜왔고 그리스도교계와 여성계 등은 법 개정을 꾸준히 촉구해왔다.
이후 우리 사회는 지난 2005년 황우석 전 교수가 자행한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조작 사태로 홍역을 치렀으며, 당시 연구를 허용했던 생명윤리법이 안고있는 각종 문제점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사회각계는 본격적인 법 개정을 추진했으며 정부는 보건복지부를 주무부서로 2여 년 동안 개정안을 준비, 공청회와 국가생명윤리심의위 등을 거친 법안을 내놓았다. 또 박재완 국회의원을 대표로 한 의원 10명은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 정부안과 국회의원 발의안을 하나로 통합해 위원회 별도 대안법률안으로 제안,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했다. 대안법률안에서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가 강조한 연구용 난자 기증 금지 내용은 빠졌으며, 난자 제공에 대한 실비보상 등 3개 항목이 추가됐다. 당초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었던 정부안에서는 난자 제공자에 대한 실비 제공 또한 금지하고 있었다.
한편 이 생명윤리법은 제정 당시에도 현재 개정 상황과 비슷하게, 꾸준한 준비를 거친 법률안이 아닌 급조된 법안으로 졸속 처리됐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던 생명윤리법 제정은 일부 과학자들의 반발과 과기부의 책임회피 등으로 주무부서가 보건복지부로 옮겨졌으나, 과기부는 복지부 별도로 법률안 입법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안과 과기부안,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윤리기본법(안)’, 정부의 생명윤리법 등 총 4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국회 보건복지위는 당시에도 이들 법률안을 통합해 국회 본회의에 제출했다.
난자 매매 합법화
대안법률의 조항들을 살펴보면 우선 난자 매매 합법화라는 결과가 우려된다.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불임용’ 뿐 아니라 생명공학 ‘연구용’ 난자가 무분별하게 채취, 이용되며, 인터넷 등을 통한 불법 거래도 횡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개정법은 난자 제공자에 대한 건강 검진, 난자 채취 빈도의 제한 등을 규정한 3개항을 포함한다. 특히 난자 제공자에게 보상금 및 교통비 등을 실비 보상할 수 있게 허용한 조항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제기된다.
난자 기증(매매)는 여성의 인권과 건강을 직접적이고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다. 특히 기증자에게 실비 보상을 하는 과정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의 인권이 무시되고 여성의 몸이 도구화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지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서도 기증자 대부분은 돈이 필요했던 학생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연구용 배아를 만들기 위해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의 20% 가량이 과배란 후유증을 겪었다. 더구나 난자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는 결국 아무 성과없이 실패의 결과만을 낳았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도 황우석 전 교수 사태 조사 당시 난자 제공여성에게 실비 보상명목의 현금을 지불한 것은 ‘난자매매’이며, 이는 윤리규정을 어긴 행태라며 2년 가까운 심의 끝에 연구용 난자 기증 금지를 의결한 바 있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는 “난자 매매는 생명윤리 등을 따지기도 전에 이미 여성의 인권과 건강을 담보로 만들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여성계의 올바른 목소리와 행동 또한 촉구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불임시술을 위한 기증이 아닌 연구용 난자 기증은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또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 14개 국가는 난자 기증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구체적인 법을 시행 중이다.
교회와 여성단체는 한목소리로 난자와 배아 관련 법안 제정 및 개정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여성단체들의 경우 인공생식 시술 등을 위한 난자 제공은 찬성하는 입장이고, 교회는 불임시술을 위한 난자 제공도 비윤리적이라고 명확히 밝히는 등 대치되는 면도 있다.
배아줄기세포연구 규제는 더 풀어
아울러 대안법률에서도 인간 생명을 철저히 파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문제 등은 여전히 심각하게 남아있다.
대안법률에서는 인간의 난자에 동물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거나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행위는 금지하지만,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는 허용한다. 또 배아줄기세포연구 범위는 도리어 확대됐다. 기존 법에서는 불임치료 및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로 제한됐던 배아줄기세포 연구 범위가 개정법에서는 일반적인 질병치료와 줄기세포의 특성 및 분화에 관한 기초연구로 넓어졌다. 지금까지는 이미 만들어진 배아줄기세포주에 대해서도 배아 연구와 마찬가지로 연구범위가 엄격히 제한돼 연구 관련 제약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개정 이유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난치병과 희귀병을 치료하기 위해 또다른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큰 모순이라고 지적하며 생명 파괴가 없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권장, 지원한다.
특히 성체줄기세포 연구와 임상실험 관련 성과들이 속속 열매를 맺음에 따라 배아줄기세포연구를 허용하는 조항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다 구체적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피부 줄기세포로 파킨슨씨병 치유 가능성이 열리는 등 기존 체세포 복제배아연구 의미 자체가 희석되고 있어 올바른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사회의 생명윤리 관련 현행법은 물론 대안법률 또한 ‘생명권’ 이해에서부터 실패한 법으로 풀이된다. 생명과학 발달로 인해 다양한 윤리문제들이 나타남으로써 이를 규제할 법체계 마련은 필수 불가결하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교회와 사회안팎의 무관심 등으로 기대만큼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무엇보다 교회 내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입법에 나서는 국회의원 등의 의식을 개선하고, 대사회적으로 올바르고 지속적인 자료 제공 등을 제공할 신자 전문가들의 활동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설명
▶주교회의가 지난해 9월 개최한 ‘천주교 생명수호대회’ 중 생명31운동본부 위원장 김지석 주교와 총무 송열섭 신부가 반생명적인 법과 정책 폐지를 촉구하는 생명수호 결의문을 선창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6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마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 및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 공청회. 이날 공청회는 윤리법 개정을 위한 의견 수렴보다 생명공학 육성을 위한 자리로 착각하리만치 불합리한 진행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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