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도로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 자각
영적 독서 이어가며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 깨달아
기도 안에서 주님 현존 느끼며 겸손·슬픔·사랑 자각
신학교 시절, 그리고 사제서품 후 신학교에서 영성 지도 소임을 맡았던 시절에 이르기까지 나는 거의 매일 같이 약 한 시간 동안 성경과 영성 서적들을 읽었다. 영적 독서가 습관으로 몸에 배이자 지루한 느낌이나 의무감에 대한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고유한 그 맛스러움과 충만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외심’이 영적 독서 및 기도의 첫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당시로서는 난 단지 하느님께 대한 소박한 믿음으로 영적 독서를 지속할 따름이었다. 물론 이러한 영적 독서가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영적 독서를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해 나가려는 노력은 나 자신이 묵상을 위해 준비할 수 있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영적독서를 계속함에 따라 서서히 나의 마음속에서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이 싹트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영적 서적을 읽은 후에는 감명받은 어휘들과 구절들을 선정, 그것을 중심으로 묵상했다. 그리고 이러한 묵상을 통해서 점점 더 깊이 나 자신과 나를 에두르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자각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인식은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다시 말해서 기도 안에서 일상 삶 안에서의 사건 사물, 사람들의 모든 만남이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이러한 의미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기는 했지만 나는 자주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겸손함과 슬픔, 희망, 그리고 사랑과 같은 느낌들을 갖게 되었다. 또한 기도에 머물러 있는 동안이면,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거나 느끼지 못했던 순간들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나의 삶 안에서의 하느님의 은총과 뜻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언제나 나의 생각과 뜻을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현존에 온전히 내어 맡겨야 한다는 영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도 훈련은 나에게 많은 좋은 영향들을 미치게 되었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의 전환,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보다 더 커다란 열망 등이 그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가기 전, 1년 동안 나는 관상의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그 상태를 체험하고자 노력했다.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체험했던 하느님과의 만남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 나는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과 같은 교회 박사들이 쓴 관상에 대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원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그분의 뜻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겠다는 원의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관상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관상의 의미를 어렴풋이 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유학생활 도중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중심을 향하는 기도, 영적 독서와 관련한 관상의 의미를 천천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토마스 키팅(Thomas Keating) 신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우리가 사람들을 관상 기도와 더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성찰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고, 이러한 성찰들을 통해서 갈망들을 고취시킬 수 있으며, 그리하여 하느님의 현존에 머물고 쉴 수 있게 이끌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중세 시대의 수도승들이 수행하던 영적 독서의 방법이었습니다. 중심을 향하는 기도 방법은 독서의 더 마지막 단계를 강조하는데 이 단계는 최근에는 아주 소홀히 되어 왔습니다.”
중심을 향하는 기도는 장애들(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에 대한 장애)을 관상 기도 속에서 용해 시키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이는 사고의 흐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하기 위해 강조되고 있다. 토마스 키팅 신부에 의하면 중심을 향하는 기도는 영적 차원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는 차원을 열어준다.
나는 욕심이 점점 더 생겼다. 단순히 정서적인 현상들이나 지적인 단계에서 하느님을 느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존재 차원에서 혹은 초월적 차원에서 관상과 더불어 신비주의를 체험하고자 원하기에 이르렀다.
1992년 3월, 피정을 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갔을 때의 일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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