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이주민들을 초청해 익산 창인동성당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서로의 장기를 뽐내고 공연을 펼치고 맛난 음식을 나눴다. 다 함께 미사도 봉헌했다. 미사 중에는 다섯 가정을 선정해 자매결연 행사도 가졌다. 모두가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런데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진 것이다. 공연 내내 비가 오다가 쉬는 시간에는 비가 좀 잠잠해지고, 다시 공연이 시작되면 비가 내리고. 참으로 막막했다. 나를 비롯해 모든 어른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하늘을 원망할 때, 한 여자 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넸다.
“신부님,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여기에 모여 기쁘신가봐요. 천둥과 번개로 축복해 주시잖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모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너무 예뻤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 해맑은 눈망울 뒤로 다문화 가정들이 겪고 있는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오버랩 됐다.
한국인 남편이 불치병으로 사망하자 아이 셋을 두고 가출한 한 인도네시아 여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비롯해 필리핀에서 시집왔다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보상금과 보험금마저도 시댁에 모두 빼앗긴 채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앞도 보지 못하는 환갑이 훌쩍 넘은 한국 남자에게 시집와 고생만 하면서 사는 필리핀 여성의 사연 등….
우리 주위에는 드라마로 제작해도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큼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다문화 가정이 즐비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찾아가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을 뿐, 막상 실행에 옮기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어른들의 처지는 그나마 걱정이 덜하다. 더 큰 문제는 다문화 가정이 깨지면서 비롯되는 우리 아이들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무조건 많은 예산을 확보한다고 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법제정이 이뤄진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관심과 사랑이다. 내 자식처럼, 내 조카처럼, 내 동생처럼 따뜻하게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이다.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손에 용돈을 쥐어주고, 맛있는 밥을 사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가족처럼 대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목말라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로만 수 백 번 외치는 이웃사랑보다는 단 한번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이웃사랑이 더욱 필요한 때다.
송년홍 신부 (전주교구 이주사목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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