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실’ 속 주님의 꽃입니다
55세 정년 퇴직. 행운아다. 30~40대 명퇴, 이직, 실직이 보편화되고 있다.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직장 생활을 은퇴하는 그 기간만큼, 직장 없이 생활해야 하는 고령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 노후를 준비할 시기를 놓친 노인들이 있다. “나는 설마 아니겠지…”가 아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 주에는 신앙인 한명 한명의 도움이 아쉬운 그 노인들의 삶,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침대에 몸 하나 편히 맡기는 것도, 숟가락을 드는 것도 힘들다. 모아 놓은 돈도 없다.
평균연령 70대 중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젠 아기가 됐다. 중풍, 치매, 노환, 지병으로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다. 주위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들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없다. 몸만 병들은 것이 아니다. 마음 속, 뼈 속까지 아프다. 그 아픔을 안고 올해에만 3명이 하늘나라로 갔다.
인천 부평구 산곡동에 위치한 무료 노인 전문 요양원 ‘샤미나드의 집’(원장 이석은 수사, 마리아 수도회)의 아침은 오전 6시부터 시작된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시간. 하지만 사회복지사 직원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잠을 못 이루는 치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밤새 시달림을 받은 탓이다.
그래도 99세에서 64세까지의 노인 100여 명 한명 한명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옷을 입게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양치질을 하게하고, 아침식사까지 돕는다. 전체 수용 노인 중 80%가 기저귀를 차고 생활한다. 가족도 하지 못하는 일을 사회복지사들은 ‘사랑’으로 척척 해낸다. 그런데 가는 말은 고운데 오는 말이 곱지 않다.
“xx아, 기저귀 좀 제대로 갈지 못해! 이런 식으로 하는 x이 무슨 (사회복지) 선생님이냐.” “아프단 말야. 좀 살살 좀 해.”
평생을 두고 쌓아온 한(恨) 때문일까. 할아버지들의 말투는 과격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노인들이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곳에 온 이도 있고, 10년 20년 가까이 혼자서 쪽방에서 생활하다 병을 얻어 온 사람도 있다. 찾아올 가족이 아예 없으면 마음이 편하다. 어렵게 하루하루 살아갈 자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빨리 안오고 뭐했어.”
평생 동안 받지 못한 관심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할머니들은 30분 간격으로 직원과 봉사자들을 부른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거다. 그러더니 대뜸 하는 말, 자신을 침대에서 내려 휠체어에 옮겨 달라고 한다.
할머니를 옮겨 앉히는 사회복지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여성 사회복지사들은 대부분 허리 통증을 직업병(?)으로 안고 살아간다. 무거운 할머니 할아버지 시중에 몸이 편한 날이 없다. 자원봉사자라도 넉넉하면 좋겠지만 목욕이나 대소변을 일일이 도와 줘야 하는 치매 및 중풍 노인들을 선뜻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전 식사 후에는 아침 체조가 있고, 이어 간식시간이다.
“평생 동안 어렵게 생활해 오신 분들이어서 이곳에 들어올 때는 건강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식사를 제때 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다 보면 건강 상태가 금새 호전됩니다.”
김영란(체칠리아) 사무국장은 “노인 분들이 이곳에 와서 좋은 대접을 받고 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이 나아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70대 중반의 한 할아버지는 지난해 입소할 때는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목발을 사용할 정도로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배뇨 배변 훈련시간. 치매 노인들의 경우, 기본적 생활 습관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샤미나드의 집에서 한 달에 소요되는 기저귀 값은 약 300만원. 세제 및 화장지 값을 포함하면 한 달 한 달 버텨 내는 것이 용할 정도다. 후원회원들의 도움이 없다면 그나마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점심시간을 거쳐 오후 2시까지는 말그대로 전쟁이다. 직원과 자원봉사자 포함 17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한다. 봉사자가 없으면 직원들만으로는 어림없다. 식사 후에는 80여 명에 이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한다. 한번 갈아 주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때 기저귀 상태를 살펴야 한다.
딸이 샤미나드의 집을 찾았다. 늙은 치매 어머니가 “너와 함께 살고 싶어”라고 말한다. 샤미나드의 집에서 생신 잔치와 음악 미술 치료를 받고, 틈날 때 마다 나들이와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도 즐길 수 있지만 할머니는 이곳이 싫은 모양이다. 딸이 찾아 올 때 마다 늙은 치매 어머니는 “데려가 달라”며 무작정 딸을 따라 나서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도 기초생활수급권자인 딸로서는 경제적으로 도저히 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상황. 딸은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를 모셔야 겠다”며 운다.
마음이 한창 무거워질 무렵, 김영란 사무국장이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 준다. 20대 청년이 있었다. 기억도 까마득한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했다. 그 후 할머니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할머니의 얼굴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거동도 못하는 몸으로 나타났다. 청년의 아버지는 행방불명인 상태. 청년은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를 선뜻 모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샤미나드의 집에 모시고는 자주 찾아왔다. 옆에서 지켜보는 효심이 극진했다. 지난해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던 날, 청년은 그 옆을 지켰다.
“가족처럼 지내던 할머니도 외면하는 세태에 젊은 청년이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를 정성껏 모시는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샤미나드의 집에는 사랑과 고통, 애환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맞게 될 그 날을 위해 작은 선업을 쌓는 심정으로 많은 분들이 샤미나드의 집과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둑해질 무렵, 샤미나드의 집이 조용하다. 직원과 봉사자 포함 150여 명이 활동한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간조(干潮)의 바닷가처럼 휑뎅그렁해진 마음을 안고 그렇게 현장(샤미나드의 집)을 나섰다.
작가 고 박경리(율리아나)는 2002년 판 토지(土地)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따뜻한 인간의 향기 뿐 아무것도 없다. 충격과 감동, 서러움은 뜬구름과 같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죄스러움이 가끔 마른 침 삼키듯 마음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죽음을 앞둔 존재에겐 어쩌면 정의와 평화, 충격과 감동, 서러움과 기쁨이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맞은 편에서 두 청년이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말다툼을 한다. 작가 박경리의 글이 자꾸만 입안을 맴돌았다.
“인간의 향기 뿐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향기 뿐 아무것도 없다….”
※샤미나드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032-508-9874~6
사진설명
▶거동이 불편한 한 할아버지의 손톱을 깎아주고 있다.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들.
▶이·미용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머리를 정리하고 있다.
▶한 어르신이 직원으로부터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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