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안에 머물러 쉬는’ 신비 체험
하느님 사랑에로 이끄심에 온전히 맡길 때
자기중심·두려움 극복하고 하느님과 일치
1992년 3월, 기도에 있어서 과거에는 결여되어 있었던 차원을 새롭게 체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피정을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었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 가득한 평화로운 오후였다. 이날 나는 한 사제관 거실에서 세 시간 동안 관상적 신비 체험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체험이 있기 전 나는 매우 지쳐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편안에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서적 느낌과 생각을 비롯해 고민과 정신적으로 골몰했던 모든 것들, 심지어는 내 몸속의 간과 내장, 위 같은 신체 기관들까지 모든 것을 토해 낼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그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빠져 나갔다.
내 앞 벽에는 거울이 하나 걸려 있었다. 문득 바라보니, 거울의 오른 쪽 면에는 나 자신의 지난 삶의 숱한 체험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가 내가 최선을 다한 소중한 체험들이었다. 그 색깔은 약간은 밝은 듯 하면서도 깊고, 침침했다.
반면에 거울의 왼쪽 면에는 지난 삶을 살아오면서 기억하기 싫은, 마음 아픈, 좋지 않았던 체험들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빠져 나가고 있는 동안 나는 이 전까지는 체험해 보지 못한, 말로 표현하지 못할 평화와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자 또다른 모습이 보였다.
이후 나는 또 다시 1시간 동안 나와 다른 이들, 그리고 나무와 빌딩 등 많은 것들이 밧줄로 하늘에 연결 지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3시간에 이르는 체험 후, 한 사제가 나를 찾아 왔다. 나는 이 체험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는 고해성사를 청했다. 이후, 나는 나의 신체적·정서적·지적 상태들이 치유되었다고 느꼈다. 또한 나는 하느님이 나에게 이러한 선물을 주셨다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체험을 통해서 얻은 가장 중요한 인식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쉰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체험을 통해 과거의 삶을 성찰하는 가운데 몇가지 중요한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첫째 ‘하느님 안에 머물러 쉰다’는 것은 단순히 정서적인 것이나, 지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인격 전체 차원에 토대를 둔 신비적 기도 체험이다. 이 체험을 하기전 나의 기도는 온전히 영적인 그리고 초월적인 차원이 아닌, 정서적이고 지적인 차원에 머물렀었다.
두 번째 인식은 하느님과의 실제적 만남은 이 세계를 통제하도록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의 힘에 의지하고, 지성적 차원에 집중하곤 했었다.
세 번째로 ‘하느님 안에 머물러 쉬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전체를 당신 사랑에로 이끄시는 것에 내 몸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나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도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날 나는 ‘성공’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 왔었다. 성공에 대한 관심은 불만족과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을 맡겨드리면 된다.
네 번째로 진정한 신비주의는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내게 한다. 하느님께 나자신을 내어 맡김으로써 우리는 이전의 모든 저급한 관계들을 재정립 하거나 척결하는 사랑의 하느님과의 생명에 넘치는 신체적 일치 결합을 이룰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진정한 신비가(기도중에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는 결코 이기적이지 않다. 진정으로 신비주의를 체험한다면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사랑을 위해 영원히 단죄받는 것 조차도 기꺼이 응할 것이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나를 완전히 없어지게 한다.
한때 나도 오로지 공부와 몇가지 사제적 소임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인식의 범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이기적으로 되어 간다. 하지만 나는 체험 후 훨씬 더 개방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나는 나의 기도에 대한 체험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많은 교회내 학자들의 이론과 연결시켜 보았다. 그 결과 나는 나의 기도에 대한 일련의 체험들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매우 소중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기도를 삶 전체에 대한 이해의 틀 속에서 유기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체험할 수 있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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