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밤마다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것이다. 매일 밤 촛불을 들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면, 나 역시 성직자의 신분이 아닌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오는 젊은 부부의 모습,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 방과 후 교복 차림으로 행사장을 찾은 학생들의 모습까지…. 이곳에서는 우리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느껴진다.
나는 신자들을 만날 때 마다 꼭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라고 권유한다. 아이들과 함께, 애인과 함께, 친구들 함께 오라고 한다. 가족이 모두 함께 나오면 더더욱 좋다. 훗날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오늘 열린 촛불문화제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소개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저기에 있었어’, ‘아빠랑 엄마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단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재미있는 추억이 아닐까 싶다. 또 역사의 한 장면을 이루는데 직접 기여(?)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지난주일. 나는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해야 했다. 한 본당 단체가 나와 함께 시골성당을 찾아가 어르신들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펼쳤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전주 시내에 들어와 식사를 하는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신부님, 빨리 병원 응급실로 와주세요.” 식사 중이었던 나는 당황했다. “지금요? 누가 돌아가셨나요?”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신부님, 오늘 누군가 분신자살을 시도했어요” 정신이 확 들었다. 부랴부랴 그 길로 응급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이미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고통으로 신음하며 몸부림치는 형제의 모습 앞에서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이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형제님, 꼭 살아야 해요. 살아서 우리 함께 해요.” 결국 서울의 큰 병원으로 후송되는 그를 보내며 다시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사제관으로 돌아온 나는 새벽녘까지 몸을 뒤척였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나 답답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최후의 방법을 택했을까. 그 방법을 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 형제는 종종 우리 이주사목센터를 찾아와 사무기기도 이용하고, 잡일도 내일처럼 도와주던 분이다. 누워있는 천장으로 그 형제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촛불문화제에서 들리는 여러 구호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란 구호다. 요즘처럼 ‘함께 살자’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때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 가는 사람들, 도시 사람들과 시골 사람들, 한국 사람들과 다문화 가정 사람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송년홍 신부 (전주교구 이주사목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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