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믿음' 파고드는 '달콤한 유혹'
불안·조급증·호기심 등 원인 … 신자 4명중 1명 “점본다”
영성 심화 교육·피정 강화해 교회에서 평화·위안 찾아야
내 미래를 점(占) 쳐 볼 수 있다. 그것도 쉽고 빠르게….
자신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신 내린 보살의 용한(?) 예언이건 클릭 몇 번에 자신의 운명이 출력되는 인터넷 사주건 방법과는 상관없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게다가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무속신앙에 뿌리를 둔 한국인들에게 점을 치는 것은 그리 무서운, 생소한 일도 아닐 터.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는 불안한 사회는 점 문화를 확산시키는 불쏘시개다. 사회가 두 걸음 변화 될 때 자신은 반걸음밖에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미리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노길명 교수(고려대 사회학과)는 “무속의 르네상스 현상이라 불릴 만큼 점 문화가 엄청난 기세로 파급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정치·사회적 불안감과 급속한 지식 정보화 사회로의 변혁에 치인 결과”라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점집에서 무릎을 꿇고 쌀 몇 톨과 엽전의 배열, 요란한 구슬소리에 미래를 맡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이러니다.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점을 어떻게 볼까.
가톨릭 교회 교리 2116항은 ‘모든 형태의 점(占)을 물리쳐야 한다. 사탄이나 마귀에게 의뢰하는 것, 죽은 자를 불러내는 것, 미래를 꿰뚫어 본다고 하는 그릇된 추측 등이 그러한 예이다’라고 밝힌다. 또 점성술, 손금, 점쟁이(무당)에게 물어보는 일 등은 하느님 한 분께만 드려야 하는 사랑의 경외심이 포함된 영예와 존경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교리는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 신자들의 생활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 기념 신자의식 조사 보고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에 따르면 영세 후 점·택일·궁합 등을 본 경험이 ‘한 번 이상’인 비율이 네 명 중 한 명 꼴 인 25.5%에 달했다. 이는 1987년(13.1%)과 1998년(16.8%)의 같은 조사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점에 대한 신자들의 생각 또한 우려를 낳는다. 대전교구의 ‘새 복음화를 위한 조사연구(2005년)’에 따르면 ‘점 보는 것을 나쁘게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28.5%였다.
김석태 신부(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 관장)는 “피정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점을 보는 데 대해 물어보면 10% 정도는 실제로 점을 봤고 30~40%는 점을 보러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며 “일반 신자들이 점에 노출된 정도는 이 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전했다.
점 문화의 부작용
가톨릭교회 교리 2115항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미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의 손길에 맡겨 드리고 이에 대한 불건전한 호기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라고 밝힌다.
오지섭 교수(서강대학교 교육학과)도 “종교적인 의미에서 특히 신앙을 가진 신자들의 관점에서 초월적 진리는 인간의 기준에서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점은 인간이 대리자를 통해서 그 진리를 미리 알겠다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비단 종교인의 관점을 떠나 점 문화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노길명 교수는 “사람들이 점에 자주 노출되면서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며 “‘재수 없다, 운이 없다’는 식의 변화는 개개인의 수동적인 삶을 부추기고 사회 전반에 걸쳐 소극주의나 적당주의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했다.
점 문화가 지나치게 기복적이고 상업적으로 치달으면서 점을 보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점 문화 자체가 사회 발전에 악영향을 끼치고 각종 부작용을 낳는 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회의 대처는?
“사실 성당에 가도 누구 하나 시원하게 내 고민을 풀어줄 사람이 없잖아요. 기도나 열심히 하라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죠”(서울 잠실본당, 양 유스티나).
성당에 가면 기도하라고 묵상하라고 하는데 점집에 가니 동쪽으로 가서 소리 나는 일을 시작하라고 하더라.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을 빗대놓는 무리가 따르지만 일견 한쪽은 지극히 신앙적이고 한쪽은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사람들은 어느 곳을 찾을까.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사목자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과 호기심에 대한 즉각적인 답변이 신자들이 점에 매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라며 “신자들이 굳이 점집을 찾지 않더라도 신앙 안에서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 내놓을 수 있도록 교회가 사목적 배려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 본당 사목자도 “점을 보는 사람 대부분이 누군가와 상담을 하고 위로 받기를 원하는 데 성당에 오면 헌금해라, 봉사해라, 청소해라는 말 밖에 안 하니 자연 점 보는 신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살찌우는 각종 영성심화 피정과 프로그램, 상담심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이 잇달아 마련되는 것은 이 같은 점 문화 성행에 대해 교회가 대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점집을 찾지 않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신앙 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다.
기복신앙에 대한 교회 연구 필요
“점 보고 와서 고해성사를 해도 보속만 주시고 그런데 가면 안됩니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면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아 또 점을 보고 또 고해성사를 하죠”(수원 호평본당, 강 스테파니아).
교회는 이제껏 점에 대해 관대했거나 혹은 무지했다. 사실 점을 비롯한 기복신앙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도 기복신앙이 그리스도교계 안팎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서술하면서도,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기복신앙은 앞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며 ‘한국 교회와 복’에 대한 신학적 입장 정리가 시급하다고만 밝히고 있다.
몇 건의 설문조사를 제외하면 교회 내에서 점 보는 신자들의 현황과 실태 그리고 신앙에 끼치는 영향 등을 총제적으로 조명한 연구가 거의 없다. 사목자들도 ‘봐서는 안된다’라고는 말해도 ‘왜 보면 안되는 지’에 대해 설명하기는 벅찬 형편이다.
따라서 기복신앙 특히 현대에 들어와 지극히 기복적이고 상업적으로 변질돼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마저도 훼손시키는 각종 점 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아울러 교회 교리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에도 점 문화가 신자들 사이에 만연하는 이유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신자들이 점집에서 찾는 갈증 해소 돌파구를 교회가 나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진설명
▶운세를 상담하는 인터넷 사이트 메인 화면.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면 누구나 집에서 역술인에게 사주를 상담할 수 있는 이 같은 사이트는 요즘 유행처럼 확산돼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급속도로 변화하는 요즘 사회에서 ‘지금 당장’ 앞날을 예측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절대자가 아닌 무속인에게 미래를 내맡기기 쉽다.
▶휴대전화에 보관할 수 있는 ‘핸드폰 부적’. 멀티미디어 시대에도 무속 신앙에 기대는 사람들을 위한 발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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