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진이가 그려내는 행복 이야기”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장애인 수영계의 박태환 김진호, 판소리 말아톤 최준 등.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피카소를 꿈꾸는 18세 김범진(미카엘·의정부 정발산본당)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소통방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스케치북과 펜이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범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30개월,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다
30개월의 범진이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달랐다. 말도 느리고 엄마와 눈 마주치는 일도 많지 않았으며 새로운 것을 접하면 거부반응도 심했다. 고민 끝에 엄마 황진오(스테파니아·47)씨는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범진이가 자폐를 앓고 있다는 것.
“하늘이 노랗고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다. 치료센터를 다니기도 했지만 범진이와 엄마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렇게 범진이는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4살, 그림과 만나다
범진이가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4살 때부터다. 벽을 화폭삼아 그린 그림들이었지만 또래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세밀한 묘사력과 독특한 상상력, 4살짜리의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3~4시간 동안 꼼작하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다. 좋아하는 만화영화도 그림을 위해 포기하기 일쑤였고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피곤한 상태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하루에 스케치북 10권을 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범진이의 눈빛부터 달라지는 거예요. 아이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놔뒀어요.”
자기 세계에 빠져있던 범진이는 그림과 만나면서 소통의 방법을 알게 됐다.
■ 17세 더 멀리뛰기 위해 움츠리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엄마는 오랜 망설임 끝에 범진이를 특수교육이 병행되는 일반학교에 진학시켰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선생님들의 배려로 잘 지낼 수 있었지만 중학교가 문제였다. 수업시간마다 달라지는 선생님들과 사춘기 시기의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범진이는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다.
특수학교로 전학을 하려고 했지만 정원이 다 차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범진이는 자유의 시간을 가졌다. 엄마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갤러리도 많이 다녔다.
중학교에서의 시간은 범진이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성숙의 기간이기도 했다. 2006년 5월에는 롯데월드 화랑에서 초대전‘범진이의 스케치북’을 열면서 등단하기도 했다.
■ 18세,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다.
올해 범진이는 끊임없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월 고양시 정발산동 아트센터 조이에서 ‘범진이의 동화이야기’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는가 하면, 4월에는 자폐성 장애아 부모들의 모임 ‘기쁨터’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2인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방송과 신문기사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범진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정준호씨와 함께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물론 주변사람들이 모두 알아보자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면 “저 아세요? 사인해줄까요?”라며 다가가기도 한다.
30개월에 자폐진단을 받았던 범진이와 18살의 범진이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최근에는 유명 소설가로부터 청소년을 위해 쓴 책에 삽화를 넣어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범진이 엄마로서 제가 바라는 한 가지는 아이의 행복이에요. 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발달-지적장애아 엄마들의 모임 ‘기쁨터’
1998년 발달-지적장애아 엄마들의 가톨릭 기도모임에서 시작된 기쁨터는 사회 안에서 친구들을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며 자녀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고 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비롯해 지역아동센터, 발달장애 가족체험학습장, 발달장애아 형제 프로그램, 발달장애아의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발달장애아와 그 가족들을 도와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들에게는 방과후 교실을, 성인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실험학교와 작업장을 겸한 곳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트센터 조이를 마련해 예술적 재능을 가진 장애아동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사진설명
▶김범진군.
▶‘시골풍경’, ‘정발산성당’, ‘수염난 범진이’, ‘엄마’(두번째그림부터)라는 제목의 범진이 작품. 자기 세계에 빠져있던 범진이는 그림과 만나면서 소통의 방법을 알게 됐다.
기사입력일 : 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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