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숲 속을 거닐면 들려오는 산새 소리, 소나무 향기가 내 영혼과 육신을 편안케 한다. 하늘 향해 나무 밑에서 바라보는 저 하늘 푸르고 잔잔한데….
4년 전 발견된 폐암 선고, 수술 후 지속되는 항암치료. 완쾌된다는 기대와 희망의 순간도 없이 재발되어 반복되는 치료에 탈진으로 119에 실려 숱한 응급실로의 후송.
용수철처럼 미사참례와 레지오 회합에 참석해 단원들과 함께 기도한다. 냉동시술 후 약을 하도 많이 병행 치료했기에 “이젠 더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네요”라는 가슴 미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힘없이 성당에 와 조용히 신부님께 안수기도 청했던 순간들. 밤마다 발 저림의 통증으로 선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생(生), 사(死), 화(禍), 복(福)은 하늘에 있는 것, 모든 것 주님께 맡기자며 겸허히 순응하니 차라리 고요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묘 자리 수소문했던 절박했던 순간들이 그땐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 그러나 이젠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이 평화롭다.
아픈 가운데 레지오 쁘레시디움 단장으로 활동을 한다. 병실방문, 가정방문으로 많은 환자의 눈길에서 오는 고통의 늪을 헤아리게 된다. 간병하는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과 피로감. 활기차야 할 가정이 우울한 분위기에서 가족들에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아픔을 겪어야 하는 내면의 신음소리. 우린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함께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용기 잃지 말자고. 아픔을 원망하지 말고 반성과 보속의 시간으로, 용서받고 용서 청하는 주님께서 내게 주신 유예의 시간들이라고. 지금 주어진 시간이 나에겐 덤으로 허락된 황금의 시간들이지만 쉬는 교우들은 그 소중함을 몰라 안타까운 마음에 수없이 방문 설득하여 교적을 찾고 주님과 화해시켜 다시금 주님의 백성으로 활동하는 그들을 볼 때 잠자는 영혼들 깨울 수 있는 도구로 써 주심에 감사드린다.
기도 중 잊혀 지지 않는 영혼이 있다. 레지오 입단한 지 9개월 만에 암으로 임종했다. 항암치료 중이면서도 교본읽기 배당을 완독하고 한 번의 결석 없이 열심이며 그 남편을 외짝 교리반으로 인도하여 영세시키고, 무의탁 시설 등을 방문하며 봉사활동을 하다가 임종을 맞은, 본당에서 레지오 장으로 치르며 함께 슬픔을 나눈 영혼이다. “저희에게 크신 자비 베푸시어 하늘시민 되게 하고 주님 밥상 함께 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늘 곁에서 함께 하며 많은 인내와 고뇌를 딛고 묵묵히 간병해주던, 그래서 천사라고 부르는 남편이 6월 예수 성심 안에서 레지오에 입단하였다. 저녁이면 기도 속에서 “모후이시며”를 함께 합송했고 이젠 ‘이 몸과 마음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어머니. 남모르는 땀 내 피와 눈물 받아주소서, 어머니’를 같이 노래하게 해 주신 주님께, 그리고 성모님과 요셉 성인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