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의 끝자락에 두렵고도 떨리는 마음으로 부임한 고잔성당! 현재 이곳은 수원교구의 178개 본당 중에 상가에 위치한 세 곳 성당 중 하나다. 아파트 주변 교차로 사거리 상가의 3층 전 층을 성당과 사무실로, 4층 일부는 교육관과 주방으로 쓰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합기도장, PC방, 노래방, 댄스 교습소가 입주해 있다. 그 외에 1층은 제과점, 호프집, 미용실, 떡집, 분식집, 인테리어 사무실 등이 2층은 학원과 독서실이, 그리고 맛있는 중국요리집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 성당에는 없는 것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어렵고도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가끔 발생한다. 지난 사순시기 때의 일이다. 금요일 오전 미사를 막 시작하는데, 갑자기 요란한 음악소리가 성당내부를 덮쳐왔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거룩한 사순시기 미사를 봉헌하는 마당에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노랫소리란 말인가. 알고 보니 성당 제대 바로 위층에는 댄스 교습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음악에 맞춰 수강생들이 에어로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성당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순시기를 늘 경쾌한 음악과 함께 보내야 했다.
또 한 번은 미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웬 술 취한 청년 하나가 성당 로비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어떻게 성당에 왔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화장실가려고 왔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나는 이곳은 화장실이 아니라 성당이라고 알려주며 그를 내보냈다.)
복합 상가의 특성상 건물 외벽에는 수많은 간판과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 안에는 그보다 더 많은 종류의 상점들이 즐비하다보니 소중한 우리 신앙을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지리적 공간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당에는 가톨릭교회 공동체로서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미사 후에 “신부님, 신부님, 수단 단추가 몇 개에요? 제가 세어 볼래요”라고 말하며 본당 신부의 수단을 이리저리 만지는 귀여운 주일학교 학생들! 그러다 본당 신부가 단추를 다 세지 못하게 수단자락을 흔들면 어느새 뒤에 와서 신부 엉덩이에 손침을 놓는 녀석들. 그리고는 신나게 도망가는 녀석들.
미사 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란함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레 성체조배를 하거나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신자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좁은 교리실에서 그 옛날 초등학교 때 사용했음직한 작고 낡은 의자와 책상에 앉아 열심히 레지오 회합을 하는 신자들. 성당 통로가 비좁아서 봉헌을 할 때나, 성체를 모시러 나올 때 늘 발걸음이 조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레 신자로서의 해야 할 일들을 다하는 모습들.
지역적 특성상 맞벌이 부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반모임과 신심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위한 배려가 고작 엘리베이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매일 미사를 봉헌하시는 어르신들.
이런 신자들의 모습은 오직 하나의 이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세례 때 받은 하느님 은총에 보답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그분께 대한 열정과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만이 모든 어려움(지리적, 공간적, 외적인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성당에는 더더욱 없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신자들과 함께 숨을 쉬며 그들과 모든 어려움을 함께 겪는 본당 신부의 사랑과 관심이라 생각된다.
사제관이 아파트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신자들이 겪는 생활고를 직·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도 많으며, 무엇보다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신자와 함께 성당까지 함께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모든 외적인 어려움들 안에서도 신앙에 대한 항구함과, 열정으로 그 모든 어려움들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의 모습에 오늘도 난 충만한 행복함과 흐뭇한 마음으로 사제관 아파트를 나선다. 정말 우리 성당에는 없는 것이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예수님, 생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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