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디 작은 몸짓으로 사부님의 길 따릅니다
전문-“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사도 13, 47)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바오로 사도가 없었다면 가톨릭 신자인 우리의 모습도 없다. 가톨릭신문은 2008년 6월 28일~2009년 6월 29일 바오로 해(Pauline year)를 맞아 ‘바오로 로드를 가다’를 연재한다.
취재는 5월 21일~6월 11일 진행됐으며 사도 바오로의 전도여행의 거점인 터키, 그리스, 몰타, 이탈리아 등 4개국을 순례했다. 가톨릭신문의 의욕적인 기획 ‘바오로 로드를 가다’는 바오로의 모습을 따라 사는 성 바오로 수도회 김동주 수사의 개인묵상과 도시의 특징,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좌충우돌 벌어지는 순례 뒷이야기 등으로 구성된다.
곳곳에 묻어있는 사도 바오로의 흔적을 찾아 숨가쁘게 진행된 ‘바오로 로드를 가다’. 바오로를 따라 수도회에 입회했고, 바오로처럼 살기를 원하는 한 수도자의 소소한 일상과 고백에 이제 독자들을 초대한다.
“사부님, 이제 제가 갑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지난 3주간 나의 사부,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저 김동주 수사(성 바오로 수도회)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가톨릭신문에서 ‘바오로 로드를 가다’ 취재의뢰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제가 가겠습니다’를 외치고 따라 나섰던 3주간의 여정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전도여행의 거점이 됐던 터키, 그리스, 몰타, 이탈리아 4개국 순례를 마감하며 먼저 저 김동주 수사는 나약한 죄인임을 독자들에게 고백합니다. 사실 저는 ‘바오로 사도의 제자’라 불리기에도 부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조차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 13)”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보잘 것 없고 부끄러운 몸이지만, 이번 순례는 제 수도생활과 인생에 우뚝 선 이정표가 됐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부, 사도 바오로께서 여정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사부, 사도 바오로의 삶은 역동적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박해했던 사람이었지만 다마스쿠스 사건을 통해 회심했습니다. 회심으로 얻은 불같은 열정으로 대륙을 횡단하는 전도여행을 했으며, 기나긴 여행 중 사도로서 온갖 모욕과 박해를 거쳐 로마에서 참수를 당하며 피로써 하느님을 증거했습니다.
2000년 전 돌아가신 그분은 진정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터키의 내리쬐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그리스의 시원한 올리브 나무 그늘에서도, 몰타 섬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로마에서의 기쁨과 행복 속에서도 저와 함께 했습니다. 여행 첫날 공항에서의 위기, 탈진으로 기진맥진했던 하루, 여행 가방이 분실되는 황망함 속에서도 사부의 손길은 늘 저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
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강한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늘 즐겁게 생활하십시오. 여유를 가지고 기분 좋게 웃으며 사십시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기, 바오로 사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바오로 사도와 같이 포기하지 않고 항상 희망 속에서 전진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끊임없이 격려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에 이제 마음의 귀를 기울여 봅시다.
3주간에 걸친 ‘바오로 로드’를 큰 탈 없이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안부를 전합니다. 나 또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항상 기억하였고 주님께 맡겨드렸습니다.
바오로 로드를 연재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제게 마련해주신 길을 더 열심히 땀 흘리며 걸어갈 것을 여러분 앞에 약속드립니다. 주님이 늘 함께 하고 계심을 이번 순례에서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이정표를 가지고 승리의 월계관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튼실한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제 독자들에게 사부를 따라 걸은 지난 3주간의 순례일기를 조심스럽게 내놓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오로를 따라 사는 수도자의 절절한 고백이자 깊은 반성입니다.
저의 이 순례가 여러분의 하늘나라를 향한 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독자 여러분께 고백을 시작합니다.
사부님,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사진설명
나의 사부, 바오로 사도의 길을 걷습니다. 지금은 발자국이 지워져 아스팔트 도로가 되었을지라도 당신의 발자취만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터키의 아낙네가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습니다. 당신도 전도여행 중 이렇게 땀을 식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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