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움과 세속의 경계를 넘나들다”
금발 미녀, 참회하는 구도자 모습 동시에 담아
르네상스 시대, 경건 탈피 화려함의 절정 표현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는 많은 화가들의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성경에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입을 맞춘 여인이자,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을 지켜본 여인이며, 부활한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이 그것이다.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율법에서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를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다.
이 일화는 요한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성경 그 어디에도 여인이라고만 했지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지목하지 않았다. 화가들이 마리아 막달레나를 아름답고 풍만한 금발의 여인으로 그린 것은 그녀를 간음하다 잡힌 여자와 동일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었지만 사실 성서적 근거는 없는 셈이며 다만 그렇게 전해졌을 뿐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또한 참회하는 은둔자의 모습으로도 그려졌다. 이는 그녀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평생을 동굴에서 참회하며 살았다는 전승에서 비롯되었다. 화가들은 이 모습 또한 즐겨 그렸는데 이 때의 성녀 막달레나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으로서 치렁치렁한 머리가 온몸을 덮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외모는 신경쓰지 않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90~1576)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와 참회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다. 화가가 사십대 초반에 그린 이 그림은 미술사에 등장하는 가장 에로틱한 여인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구불구불한 금발이 온 몸을 덮고 있는데 그 사이로 풍만한 가슴이 살짝 보인다. 제목과는 달리 그녀는 참회한다기 보다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상징인 향유를 담은 작은 단지가 없었다면 이 여인을 성녀 막달레나로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티치아노는 색채의 대가답게 아름다운 금발이 화면을 지배하게 그렸다.
중세는 경건한 신앙의 시대였고, 그림이란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신자들로 하여금 분심이 들게 하는 아름다운 여인 따위는 그림 속에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여인이 처음으로 그려진 것은 르네상스 시대이다. 화가들은 세속에 눈을 떴고, 그림이란 이제 단순히 교리 전달의 수단에서 벗어나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역할도 맡아야만 했다. 당시에는 TV도 인터넷도 사진도 없었으니 뭔가 볼거리를 제공하는 시각자료가 필요했다면 그림이 그 기능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화가들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의 주제란 성경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눈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화가들에게 마리아 막달레나는 한마디로 구세주였다. 막달레나가 간음하다 들킨 여인이라면 그녀를 마음껏 화려하고 여성스럽게 그려도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실에 충실한 묘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화가들은 앞 다투어 막달레나를 풍만하고 아름다운 금발미녀로 그리기 시작했으며 티치아노의 이 작품은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티치아노가 활동했던 도시는 16세기 베네치아이다. 이 무렵 베네치아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공화국을 건설했고, 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말해주듯 당시 베네치아에는 상업이 번창하고,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먼저 세속적인 삶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가 탄생시킨 가장 위대한 화가 티치아노에게서 이 같은 작품이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로부터 약 30년 후 티치아노는 또 한 점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렸다. 얼핏 보기에는 거의 같은 모습이지만 이번에는 옷을 걸치고 있어서 가슴이 보이지 않으며, 머리카락은 화려한 금발이 아니라 갈색이다. 그녀 앞에는 성경과 구도의 상징인 해골이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것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성녀의 얼굴이다. 그녀는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이다.
티치아노는 이 그림을 좋아하여 세상을 뜨기 전까지 자신의 방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나는 이 두 작품을 모두 좋아한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화폭을 매혹적으로 물들이는 화가 티치아노의 숨결이 느껴지고, 두 번째 그림에서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노 대가의 겸허한 삶이 느껴진다.
고종희(마리아, 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최근 국내에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던 자리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3여개월에 걸쳐 펼쳐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전-렘브란트와 바로크 거장들전’이었다. 당시 전시회는 르네상스부터 로코코, 특히 바로크 시대 종교화의 정수들을 만나는 자리로 큰 관심을 모았었다.
격정적인 바로크 양식의 출발을 알린 작가로 평가받는 티치아노는 무엇보다 색채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인물이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각각 조형 위주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을 16세기, 티치아노는 베네치아에서 색채 위주의 화풍을 폭발시켰다.
베네치아파의 색채주의에 대해서는 지난 달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을 만나며 간략히 살펴본 바 있다. 티치아노는 조반니 벨리니의 수제자이자, 스승을 뛰어넘어 천재적인 기량을 보이며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스스로 ‘명암의 색채는 나의 시’라고 말하며 형태와 느낌을 만드는 최고의 수단으로 색채를 꼽았다. 더욱이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빛의 효과까지 더해져 약간은 희미한듯 하면서도 막연한 깊이를 보이는 분위기도 볼 수 있다. 티치아노의 이러한 화풍은 17세기의 P.루벤스, H.렘브란트, 드라크로아로 이어지며 바로크 양식을 꽃피웠다.
또한 티치아노는 일반인들에게는 초상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티치아노의 생존 당시에는 베네치아의 주교와 왕 뿐 아니라 귀족들 중에는 티치아노의 집으로 작품 구경을 가지 않거나 초상화를 의뢰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알려질 정도다.
여타 미술의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티치아노에 관한 저서들도 다수 시중에 나와 있다. 그러한 책 중에는 ‘자연보다 더욱 강한 예술’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자가 있다. 특히 티치아노 작품의 색채와 빛의 효과를 떠올릴 때 매우 공감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림설명
티치아노,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33, 85 x 68 cm, 피렌체, 피티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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