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영업'하러 세상 끝까지 간다
5월 21일. 바오로 로드가 시작됐다.
출발은 아주 좋았다. 새벽미사 중 준관구장님과 여러 수사님들의 따뜻하고 기대 섞인 응원을 등에 업고 들뜬 마음으로 차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졌다. 불안한 마음.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내 여권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오늘 ‘출국’도 불가능하단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영구귀국하면서 외교부에서 내 여권을 말소시킨 것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동안 서랍에 고이 모셔놓고 오늘에서야 꺼내온 것이다. 회색 잿빛 하늘이 이제는 아예 노래졌다.
공항 내 영사관 직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촉박한 시간 안에 모든 서류를 꾸몄다. 공항에서 간절히 정말 간절히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수사의 모습이라니.
보딩 타임 5분전. 임시여권이 기적적으로 발급됐다.
“하느님, 그리고 여권님 고맙습니다!”
황당한 사건이었지만 나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 시민권의 소유자였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소(사도 22, 29).”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에서 아무런 재판 없이 매질을 당했을 때 자신이 로마시민임을 알려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은 채 공공연히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슬그머니 내보내겠다는 말입니까?(사도 16, 37)’라고 말했다.
물론 여권의 유효기한만을 확인했던 내 부덕의 소치지만 이렇게 한 시민이 시민권을 가짐으로 인해 보호받을 수 있고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상기하게 됐다.
우리 모두도 예수님의 수난 공로로 인해 하늘나라의 시민권자가 됐다. 그 시민권을 통해 특혜를 누리고 참으로 크디 큰 은총을 받는 우리는 늘 감사해야한다.
열두시간 그리고 한시간을 더 날아 도착한 곳은 터키의 타르수스. 바오로 사도는 킬리키아의 그 유명한 도시 타르수스 출신이면서(사도 21, 39) 로마 시민권자였기에 숱한 전도여행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퍼뜨릴 수 있었다.
자신이 부여받은 삶의 선물을 최대한 활용해 선교활동 영역을 넓혔던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생가터로 추정되는 우물을 찾았다.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 이곳이 확실하다는 증거는 없지만, 사부가 태어난 타르수스 고장의 한곳이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사도 바오로는 선교활동 중 선교비를 마련하고, 아무에게도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일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사도 18, 3).”
우연의 일치인지 수도회 입회 전 나의 직업도 천막장수까지는 아니지만, 원단 세일즈 맨이다. 원단을 팔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삶의 모든 중심이 돈이었고, 생계를 위한 원단 판매에 나 자신을 던졌다.
영업일을 한답시고 하느님은 늘 뒷전이었고 세속의 향락과 물질만능이 내 전부였던 것이다. 부와 명예, 신분상승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성소 이야기는 사도 바오로의 회심장소, 다마스쿠스에서 하기로 하고 현재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원단 세일즈맨이었던 나는 지금 우리 삶의 최종 목적이신 주님을 전하기 위해 월급 한 푼 없는 세일즈를 한다. 거룩한 영업이다. 기쁜 소식을 퍼뜨리기 위해 성 바오로 수도회 도서, 음반 등을 전하러 이제 나는 세상 끝까지라도 가는 것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 15)”.
타르수스에서 나는 감동의 땀을 흘린다. 전보다 더 값진 땀이다.
터키 타르수스에서 김동주 도마 수사
터키 타르수스에서 /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터키는
'달과 별' 애칭으로 불리는 터키 국기
터키 국민은 터키 국기를 ‘달과 별’이라는 뜻의 ‘아이 일디즈(ay yildiz)’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세가 비잔티움(이스탄불)의 성벽 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을 국기로 그리고 있다.
옛날에는 동로마 제국령이었으나 11세기 이후 셀주크투르크의 등장으로 차차 이슬람화됐다. 13세기 말 성립된 오스만투르크 제국(1297~1922)은 16세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으로 참전했다. 패전을 틈타 그리스군이 본토에 침입해오자 1919년 케말 파샤(아타튀르크)가 ‘아나톨리아, 루메리아 권리옹호단’을 조직했으며, 1920년 정부가 연합국과 굴욕적인 세브르 조약(영토를 연합국에 할양하는 등 터키의 사실상 해체를 결정)을 맺자 앙카라에서 터키 대국민의회를 소집하고 국민군을 조직, 그리스군을 격퇴했다. 1928년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조문이 헌법에서 삭제되면서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 타르수스는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필리피 3, 5) 개심 후 3년이 지난 36년 경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와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를 만나 본 다음(갈라 1, 17~19),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가 약 8년 동안 지냈다(사도 9, 30).
44년경 그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의 일을 돌보던 바르나바의 초빙을 받아 안티오키아로 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의 신도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사도11, 25~26).
바오로는 세차례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됐다. 그 때 바오로가 로마의 파견대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 “나는 킬리키아의 타르수스 출신 유다인으로 그 유명한 도시의 시민입니다”라고 말했다(사도 21, 39).
타르수스는 641년부터 아랍인들의 침공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쇠퇴했다. ‘바오로 생가 우물’이라는 것이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다만 많은 순례객들이 그곳을 찾아 바오로의 탄생을 기리며 묵상을 하고 있다. -자료 정양모 신부의 ‘위대한 여행’(생활성서사, 1997년).
사진설명
▶바오로 사도의 생가터로 추정되는 터키 타르수스의 우물에서.
▶터키 타르수스 우물터 표지판. 달과 별의 터키 국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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