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한 생명 살릴 수만 있다면”
“앞을 볼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건강한 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 피 한 방울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1급 시각장애인이면서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헌혈로 ‘생명 나눔’을 실천해 온 김병식(바오로·64·광주대교구 염주대건본당)씨의 사연이 주위를 훈훈케 하고 있다. 김병식씨는 지난 6월 11일 광주 동구 충장로 ‘헌혈의 집’을 찾아 233회째 헌혈을 마쳤다.
서구 상무동 자택에서 헌혈의 집까지 찾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도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 콜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가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누군가의 위급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헌혈의 집을 찾는다”며 “이제 헌혈은 도저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김병식씨가 매달 헌혈에 나선 것은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78년 아내와 셋째 아들을 익사 사고로 잃고 비관에 빠져 세상을 한탄했다. 술에 취해 방황을 일삼던 그는 결국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나마도 남아 있던 삶의 이유가 한 순간에 꺾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과 싸우기를 5년.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1984년 주위의 권유로 우연한 기회에 성당을 찾은 김씨는 그날부터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게 됐다. 광주 방림동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신앙생활에 들어간 그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안정을 찾았다. 그 동안 본당 레지오마리애 단장을 3년이나 맡았고, 가톨릭맹인선교회 회장을 4년이나 역임했다.
김씨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헌혈 봉사에 나서게 됐고, 그 선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김씨는 “헌혈은 정년이 65세로 제한돼 있어 이제 헌혈 봉사도 1년 남짓 밖에 할 수 없다”며 “남은 삶도 건강이 허락하고 힘닿는데까지 하느님 보시기에 착하고 좋은 일만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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