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부제서품식이 열린 잠실 실내체육관에는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사제 서품식에 더 열광한다. 하지만 수품자 입장에서 보면 부제품 의미는 사제품에 비해 결코 뒤떨어 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직의 길로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이기 때문에 부제품을 앞둔 이들의 기도와 고민은 더 깊을 수 밖에 없다. 사제 서품의 그늘에 가려진 부제 서품식, 그 은총의 현장을 찾았다.
부제 서품식 10분전. 평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찾아가 조언을 듣는 한 사제를 서품식장 입구에서 우연히 만났다. 대뜸 “가톨릭신문 기자가 부제서품식에 오는 것은 처음 봅니다. 내일 열리는 사제서품식에도 당연히 올 거지요?”한다. “올해 사제서품식 취재는 부제서품식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하자 고개를 갸우뚱 한다.
찾아온 신자들이 적은 탓에 서품식장은 차분한 분위기 였다. 수도자를 배려해 별도로 설치한 좌석에는 10여 명 안팎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장엄한 전례만이 부제서품의 중요성을 드러낼 뿐이다.
대신학교 칸타빌레 성가대, 가톨릭전례문화연구소 연합합창단의 사제 영접가 ‘보아라 우리의 대사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교단과 사제단이 부제 수품 대상자 33명을 앞세우고 입당했다. 김안나(안나)씨가 디자인하고 이광호(요셉)씨가 설치한 제단에는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말씀을 지켰습니다”(2티모 4, 7)라는 성구가 선명하다.
복음 낭독 후 본격적인 부제 서품식이 시작됐다. 부제 수품 후보자들도 잔뜩 긴장한 표정. 신학교 학장 신부의 후보자 호명에 “예 여기 있습니다”라며 후보자들이 앞으로 나선다. 침묵 가득한 서품식장에 정진석 추기경의 훈시가 이어진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대로 여러분도 행하라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사랑으로 주님께 봉사하듯이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봉사하십시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니, 온갖 부정과 탐욕은 우상을 섬기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신앙의 신비를 깨끗한 마음에 간직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입으로 전할 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십시오.”
이어 수품자들은 부제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하느님과 교우들 앞에서 약속했으며, 세상에 죽고 주님께 봉사하겠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제대 앞에 엎드려 주님 은총과 성인들의 전구를 청했다. 곧이어 주교들의 안수와 장엄한 서품기도, 착의식, 복음서 수여 및 평화의 인사가 이어졌다. 수도회 1명 포함, 33명의 새 부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날 평생 동안 독신으로 살 것을 서약한 부제들은 앞으로 성령이 은사로 힘을 얻어 주교와 사제를 도와주고 말씀과 제대와 애덕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모든 이의 종임을 드러낸다. 또 주 그리스도께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온전히 헌신하는 독신생활로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더욱 자유로이 하느님과 사람들을 섬기고 초 자연적 삶에 이바지하게 된다.
특히 제단의 봉사자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미사 성제를 준비하며, 신자들에게 성체와 성혈을 나눠 줄 것이다. 이 밖에도 주교의 위임에 따라 비신자와 신자들을 인도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기도를 지도하고 세례를 집전하며 혼인을 주례하고 축복하고, 죽음에 임박한 이들에게 노자성체를 모셔가고 장례예식을 주관하게 된다.
아들의 부제품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감회는 남달랐다. 박태민 수품자의 아버지 박기창(이냐시오, 64, 세검정본당)씨와 어머니 이영순(루치아, 53)씨는 “늘 기쁘게 살아가는 사제, 겸손한 사제로 교회에 봉사했으면 한다”고 기도했다.
부제 서품식이 끝난 후, 수품자들은 긴장이 채 풀리지 않은 듯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나의 힘을 빼고 하느님의 힘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오석준 부제, 역삼동) “본당 신자들을 위한 기도,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늘 바치겠습니다.”(손태진 부제, 신월1동) “부제품을 앞두고 하느님 뜻대로 쓰일 도구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김형균 부제, 대림동) “오늘 저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절 받아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유동철 부제, 명일동)
얼마 되지 않던 신자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서품식장에 서품식 초대장 한 장이 나뒹굴고 있었다. 초대장 ‘초대의 말씀’이 찡하게 와 닿았다.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차에 남은 생을 바쳤던 바오로 사도처럼/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다 뿌리치고/ 하느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무를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하느님 일꾼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거룩한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초대장에는 이런 말도 씌어 있었다. “오랜 기간 부제 양성을 위해 애써주신 신학교 교수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부제란
부제는 교회에 봉사직으로 서품을 받은 남자로, 사제의 아래이고 차부제(次副祭)의 위다. 한국교회의 경우, 사제직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설교, 세례, 결혼식 주관, 본당의 운영, 그 외 사항에 있어서 사제를 보좌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사제직을 준비하는 일시적 부제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임무를 염두에 둔 종신부제 제도도 두게 되었다.
▨ 사제가 되기 까지…
1. 본인의 성소동기 확인
2. 본당 신부의 추천과 본당 성소자 모임 참여
3. 교구 예비신학생 모임 참여(중1~고3, 일반)
4. 신학교 입학
5. 입학 후 3년째(군입대 및 현장 체험)
6. 신학교 복학
7. 착의식, 독서직, 시종직
8. 부제 수품
9. 사제 수품
기사입력일 : 20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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