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우 신부 로마 성 바오로의 해 개막식 참가기
등불이 켜지고
성바오로 대성당 입구에 설치한 등잔에 불이 켜졌다. 작은 등잔에 불 하나 밝힌 것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강생하여 사람이 되신 오신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온 인류가 구원된 것처럼, 하나라는 것은 작은 단위를 나타내는 숫자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작은 등불에는 ‘바오로의 해’가 시작되었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동시에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오로 사도의 삶과 정신을 기리면서 또 다른 바오로로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교회 공동체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물론 바오로의 해를 밝히는 이 등불은 내년 6월 29일에 꺼질 것이다. 하지만, 성당 입구에 켜진 등불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우리가 사도 바오로의 신앙과 삶을 모범으로 삼는다면 이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치를 염원하며
이토록 영광스러운 등불이 켜지던 바오로의 해 개막식은 오후 5시 30분경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예식에 참례하는 사람들은 이미 2시부터 바오로 대성당앞에 줄을 서 있었다.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성직자들과 평신도들로 성당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고, 각자의 생각과 참가 목적이 달랐겠지만, 신앙안에 한 형제 자매라는 사실 때문에 서로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단연 주목을 받은 것은 한복을 입고 참가한 의정부교구 신자들이었다. 수많은 나라의 참가자들이 함께 사진 찍기를 청하였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미소를 띄우며 함께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일치와 화해’는 이토록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일치할 수 있으니 말이다.
5시 40분 십자가를 앞세운 복사단의 행렬이 시작되었고, 5시 44분경 교황님께서 도착하셨다. 성당안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저녁성무일도는 그레고리안 성가로 봉헌되었고, 라틴어를 기반으로 중간 중간 이태리어와 영어, 희랍어, 독일어, 포르투칼어, 불어, 스페인어로 기도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저녁기도에 참례하면서 이 모든 풍광이 일치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성당에 모여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오로 사도의 열정적인 헌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
지난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교황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이방인의 사도는 전혀 재능 있는 연사가 아니었고’ 따라서 ‘그가 성취한 특별한 사도적 결실은 뛰어난 수사법이나 세련된 호교론이나 선교 전략 덕분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나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투신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그 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감옥살이도 하고, 예루살렘 사도회의와 갈등도 겪었지만 사도로서의 열정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이러한 열정을 본받고자 2000년이 지난 지금 바오로의 해가 개막되는 것이다.
비움과 채움
이번 개막식 참가를 준비하며 바오로 해의 주제 성구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 20)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의 지독한 박해자였던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채우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바오로에게 비움은 ‘없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우리 역시도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채울 수 있다면 바오로의 해의 등불은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 위원장
■ 이모저모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6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내년 6월 29일까지 1년 동안 계속되는 ‘바오로의 해’ 개막식을 거행하고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오늘날 교회에 주는 의미를 성찰했다. 아울러 한국교회를 포함 세계 각국 지역교회들 역시 이날을 기해 일제히 바오로의 해 개막을 선포하고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런던교구 개막미사 거행
○… 포르투갈 주교회의는 바오로의 해 개막에 즈음해 주교단 이름으로 담화를 발표, 이번 바오로의 해가 특별히 포르투갈 교회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영국 웨스트민스터대교구장인 코맥 머피 오코너 추기경은 28일 오후 런던교구의 바오로의 해 개막미사를 집전하고 특별히 바오로의 해가 젊은이들의 신앙과 교회 생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캐나다 사목교서 발표
○… 캐나다 토론토 대교구장 토마스 콜린스 대주교는 27일 밤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개막미사를 거행하고 사목교서를 발표, 전체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특히 토론토대교구는 기도서를 특별제작해 바오로의 해 기간 동안 기도 운동을 펼친다.
미국 교회 역시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마련하는데, 피닉스 교구장 토마스 올름스테드 주교를 포함한 많은 주교들은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하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사랑과 바오로 사도의 복음적 열정을 본받을 것을 당부했다.
카메룬, 그리스도교적 삶과 선교 열정 강조
○… 아프리카 카메룬 주교단은 사목교서를 통해 바오로의 해가 그리스도교적 삶과 선교활동에 큰 자극을 주기를 바란다며,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불리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모든 이들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시아 교회도 바오로의 해 기념 행사 풍성
○… 선교지역인 아시아 각국 지역교회들에게 있어서 이번 희년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아시아 교회들 역시 보편교회의 바오로의 해 기념에 즈음해 다양한 사목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태국 주교회의는 바오로의 해 기간 동안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는 해로 지낼 것을 다짐하는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성경 묵상에 집중적인 사목적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홍콩 교구에서는 요한 통 혼 주교의 집전으로 29일 개막미사를 거행, 개막미사 중 사도 바오로에 대한 책자를 모든 신자들에게 수여하는 예식을 마련했다. 홍콩 교구는 바오로의 해 기념행사를 주관하는 위원회를 주교회의 산하에 설치했다.
인도네시아는 특별히 기간 중 사마랑교구 주관으로 성체대회를 거행할 예정이다.
사진설명
▲사도 바오로가 회심을 한 장소인 다마스커스에서 6월 29일 신자들이 대축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바오로의 해 개막식을 위해 성 바오로 대성당에 도착, 바오로 동상을 지나가고 있다.
▲바오로의 해 개막식에 참석한 의정부교구 신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6월 29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 베드로·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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