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유혹을 끊고 기쁜 소식 전하러
나는 회심했다
회심(回心).
수도회 입회 전, 나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기 위해 원단 영업에 목숨을 건듯 최선을 다했고 세상의 유혹과 쾌락에 빠져있었다. 사도 바오로가 회심하기 전 바리사이파로서 교회를 박해하는 일을 당연한 소명으로 여겼던 것처럼 나의 경우도 비슷했다.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철저하게 하느님을 외면했다. 주(主)님을 섬기는 대신 다른 주(酒)님을 받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생활.
아니, 영업직에 뒤따르는 당연한 일들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성소라든가 수도자라는 말은 내게 뜬구름 잡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도 바오로처럼 고꾸라졌다. 그것도 철퍼덕, 땅바닥에 내다꽂혔다. 스테파노 성인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아두었고, 교회를 탄압하러 가던 사울이 주를 만나 땅에 엎어지며 회심한 것처럼 말이다.(사도 9, 4)
섬유업계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25살의 가을. 무엇에 홀린 듯 나는 명동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나도 삶에 찌들었던 모양이다. 몇 년 만에 찾은 성당인가. 성체조배를 하고 있는데 귓가에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였다.
“도마야, 너 왜 여기 있느냐. 여기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걸어라.”
어디로 가지? 나는 꿈을 꾸듯 명동 바오로딸 서원으로 갔다. 땅에 엎어진 후 눈까지 멀었던 사울이 주님의 인도로 하나니아스에게로 가서 안수를 받고 기운을 차렸듯(사도 9, 17; 19) 나는 그곳에 계신 수녀님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난생 처음 수도회 입회를 권유받았던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부끄러워 성소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지만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으로 만족했다. 이후 나는 서울 돈암동성당에서 우연히 레지오 마리애를 소개받아 입회했고, 봉사활동을 실천했으며 그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했다. 그토록 외면했던 하느님 안에서 이제 나는 헌신과 열정, 행복 속에 청춘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 행복. 세상은 결코 내게 줄 수 없었다. 천진하게 장난치고 웃고 기도하는 수도원 형제들의 모습. 그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성 바오로수도회 입회를 결정했다. 직장 상사들은 ‘그런 감옥 같은 곳에 왜 가느냐’고 반대했지만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회심했다. 적당히 세상 유혹과 타협하며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오로지 복음만을 위해 살게 됐다.
“사울은 더욱 힘차게 예수님께 메시아임을 증명하며,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다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사도 9, 22)
나의 사부이신 사도 바오로는 회심사건 후 수많은 선교를 했는데 적당히 하는 법이 없었다. 목숨을 다해 죽을 각오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했다. 회심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회심 후에는 순교를 각오하고 고된 땀을 흘리며 주님의 이름으로 일했던 것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일러주셨습니다.”(사도 20, 23)
마음과 정신이 새롭게 된 나는 이제 뛰고 있다. 주님을 위해서, 수도자로서 나는 매스컴 사도직을 수행하다 쓰러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의 회심은 어느 순간이었는가. 세상의 것에 발목 잡혀 아직 회심하지 못한 채로 서 있지는 않는가.
기자에게 다마스쿠스에 관련해 ‘나의 회심’을 이야기하던 중, 말씀사탕을 뽑았다.
“그대는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콜로 3,2)
우리는 어쩌면 오래 전부터 회심의 장소, 다마스쿠스에 가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저기 멀리, 다마스쿠스가 보인다.
-사도의 회심을 묵상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관련 내용 사도행전 9, 1∼22
박해의 길 벗어나 바른 길로 돌아서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제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줄 것이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놀라며,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차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여,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다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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