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체험학습 통해 행복한 아이로 성장”
늦었나? 아침 8시인데. 몇몇 유아들이 벌써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날듯이 빠른 속도를 내던 아이들의 뜀박질은 성모상 앞에서 급브레이크. 좀전과는 딴판으로 차분히 두손을 배꼽 쪽에 모은 아이가 성모님께 인사를 한다. 그리곤 옆에 선 엄마에게도 자기처럼 성호를 그으라고 재촉이다.
선생님들도 벌써 출근해 아이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한다. 정규 등원 시간은 오전 9시이지만 출근 시간이 빠듯한 맞벌이 엄마들을 위해 일찍 문을 연다고.
인천 계양산 아래 자리잡은 노틀담유치원 교사는 원장 변마리아 도미니카 수녀를 포함해 총 7명. 다른 유치원에 비해 원아수 대비 교사수가 월등히 많다.
아침 8시30분. 오늘의 말씀과 기도에 이어 하루 일정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이제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맞춤식 보살핌으로 끝까지 책임
우리 사회에서는 각 교육과정별 ‘교사’들 사이에서도 ‘유치원 교사’는 ‘3D 업종’이라고 불려질 만큼 힘든 직업으로 인식된다. 각종 잡무는 물론 온종일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매우 큰 직업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유아들과 삶을 함께하는 만큼, 매순간이 철저한 준비와 긴장의 연속이다. 교사 한명의 태도가 아이의 평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노틀담유치원 교사들에게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몇몇 일반인들은 노틀담유치원에 대해 선입견도 품어왔다. 해마다 평균 7대 1을 넘나드는 등록 경쟁률, 일반인들은 유치원 내부 시설 뿐 아니라 숲속에 조성된 어린이놀이터와 조랑말 사육장 등의 부대시설을 보며 교육비도 많이 들 것이라는 기우였다. ‘돈 좀 있는 집’ 자녀들만 다니는 곳이라는 곡해였다. 하지만 노틀담유치원에선 어떤 종류의 야외 체험학습을 하더라도 정해진 교육비 외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가비용을 받지 않는다.
특히 변수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우리 유치원에 더 많이 오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한번 등록되면 맞춤식 보살핌으로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유치원 시스템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을 지켜 갖가지 교육혜택도 제공한다.
변수녀는 노틀담유치원에 들어오기 위한 조건은 단 한가지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곳의 교육방식에 동의하고 믿는 부모님들의 가치관이 바로 그것. 구체적으론 이곳 유치원 교육 외에 어떤 사교육 활동도 절대 금지라는 조건이 따른다.
요즘 세상에서 어떤 부모가 그 조건에 선뜻 동의할까. 성장단계별 맞춤교육이 넘쳐나고 온갖 두뇌트레이닝에 인성은 물론 감성, 창의성 개발 교육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경쟁사회에서 사교육에 관심갖지 않기란 쉽잖은 일인데….
# 잘 노는 것이 교육
그러나 실제 이곳에서의 하루를 지내보니 건강히 ‘잘 노는 것이 교육’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기 전 변수녀가 전한 이야기는 한가지였다.
“기다려주세요.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스스로 체험하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감과 행복에 충만해집니다. 자신감이 생길 때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행복합니다.”
기자가 하루를 보내는데도 큰 주의사항이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어느 교실이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그저 같이 어울려 놀 수 있으면 됐다.
‘엄마 참여수업’이 이어진 이 날, 사실 엄마들이 더 신이 났다. 방식은 평소와 다름없는 이동식 수업이었다. 노틀담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각자 가고 싶은 교실에서 자유놀이를 한다.
연령별 담임교사가 있긴 하지만, 7명의 교사들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 전체 아이들을 돌본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너희 선생님이 누구시니?’하고 물어보면 7명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각 수업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의견을 이야기할 기회가 제공된다. 각 수업은 짧았지만 흥미로운 놀이와 배움, 무엇보다 자발적인 아이들의 움직임이 넘쳐났다.
# 수업 후 더 바쁜 일정
드디어 간식시간. ‘이젠 좀 쉴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엄마 참여수업’ 날에는 일정상 점심식사가 없고 잠깐의 간식시간만 마련돼 교사들의 여유가 없다. 놀이시간에도 교사들은 숲속 놀이터에서 한껏 뛰는 아이들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나마 잠깐 짬이 나면 몇몇 교사는 다음 수업 내용을 곱씹고 있었다.
그 사이 변마리아 도미니카 수녀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했다. 변수녀는 유아교육 전문가로 나선 지 21년차되는 베테랑 교사다. 원장으로서 대외적인 업무 처리만으로도 분주하지만 부모교육과 각종 종교수업도 도맡아 지원한다. 이날도 기자에게 잠시 수업내용을 설명해주다 외부업무를 보다 교재주문을 하고 학부모 상담까지 소화하느라 분주했다. 잠시 자리에 앉았나 싶으면 학부모 인터넷카페까지 모니터하고 있다.
1시30분. 이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 한숨 돌리겠구나 싶었는데 종일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종일반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꿈바라기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이곳 도서관은 3500여 권의 어린이 양서로 꾸며진 곳으로 특히 종일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종일반 아이들이 외부 체육강사와 운동하러 나간 사이, 지친 기색도 없는 미소 띈 교사들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식사는 잠시 미뤄졌다. 오늘은 시교육청을 연수차 방문해야하는 교사도 있는 터라 다른 일을 접고 우선 회의석에 앉았다. 오늘 일정에 대한 평가시간이었다. 교사들은 속모르는 사람이 참여했으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서로에게 냉정한 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을 이어나갔다.
2시를 넘겨서야 교사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이때에도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 등에 대한 대화가 끊임없이 오간다.
휴식도 잠시, 교재 정리에 유치원 내 움직임이 다시 부산해진다. 몬테소리 응용 교구들이라 하나하나 닦고 제자리에 정리하는 시간만도 두어시간은 너끈히 걸린다.
개별 교사로서의 일과는 이제 시작이다. 각자 하루 평가서를 작성하고, 내일의 계획표를 준비하느라 다시 분주한 모습이었다. 3년차 이하 교사들은 더불어 교육일지 작성에 여념이 없다. 시, 분 단위로 하루 일과를 세세하게 짜고 평가한다. 아이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다. 또 몇몇 교사는 부모님과 면담을 위해 시간을 비웠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2차 ‘엄마 참여수업’이 있고 또 주6일 근무하는 부모님을 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게다가 오르프 음악수업도 예정돼 있다.
노틀담수녀회는 몬테소리 교육연구소와 오르프 음악연구소를 자체 운영하는 덕분에 유치원 교육비에 부담을 주지 않고 교육과정을 지원한다. 특히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오르프 음악 수업을 개설하고, 도서관도 개방하는 것은 이 유치원만의 특징이다.
# 아이들의 마음은 ‘피로회복제’
교사들의 퇴근 시간은 6시. 교사들은 내일 수업점검을 재차 마친 후 유치원 문을 나선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엄마와 함께 유치원 놀이터를 다시 찾은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옆건물인 노틀담장애인복지관 학생들과 마주하자, 서로 도와줘야 한다며 부산스러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교사들에게는 ‘피로회복제’다.
사진설명
▲‘엄마 참여수업’에서 한 교사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노틀담유치원 교사들은 연령별로 담임이 정해져 있지만 각자 특기를 살려 전체 아이들을 돌본다.
▲수업이 끝난 뒤 점심도 거르고 선생님들이 원장 변마리아 도미니카 수녀(왼쪽)와 함께 회의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하루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진지한 토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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