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사와 관계 맺으며 ‘나’ 형성
인간 저마다 내면에 ‘형성력’ 갖고 탄생
외양·정신·영적 형태 균형 이루며 성장
이쯤에서 정리한번 하고 넘어가자. 영성 신학의 낯선 용어와 복잡한 구조 때문에 때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천천히 글을 읽다보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 수 있을 것이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나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형성 시키고자 하는 신비로운 하느님)께선 나(인간)의 ‘토대를 이루는 생명 형태를, 선형성(미리 이루어 지도록 형성)시켜 주셨다. 선형성 시켜 주셨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 안에 형성력을 담아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이 말이 뭔가. 쉽게 말해서 하느님은 나를 창조하실 때 ‘내가 나이게끔 하는 그 토대’를 미리 내 안에 심어 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형성의 토대를 이루는 생명 형태는 신체적 차원, 정신적 차원, 영적(마음적) 차원 3가지다. 생체적 차원은 우리가 육신(몸)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특별히 생체라고 표현한 것은 ‘생생한 살아있는 몸’을 강조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나에게 신체를 주셨고, 정신적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영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미리 주셨다.
문제는 이렇게 선형성된 나는 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3가지 형태로 선형성된 나는 사회?역사와 역동적인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면 삶과 죽음, 죄와 선, 덕을 쌓고 다른 이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우리들은 이 역동적 관계 안에서 각자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해 나간다. 나는 관계성 안에서의 ‘나’인 것이다.
3가지 형태의 내가 사회와 역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역시 3가지 형태의 관계성이 나타남을 의미한다. 결국 여러 실제적 삶의 형태(actual life form)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외양형태(apparent form), 교류 또는 유통형태(current form), 핵심형태(core form)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바 있지만, 신체적 차원에서 외양형태가 나타나고, 정신적 차원에서 교류 형태가 나타나고, 영적 차원에서 핵심형태가 나타난다. 내가 춤을 춘다고 할 때, 춤추는 즐거운 모습은 외양 형태이고, 정신적 만족은 교류형태이고, 영적?내면적 기쁨의 충만함은 핵심형태인 셈이다. 내가 노래방 기계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눈으로 가사를 읽으며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외양형태이고, 가사를 정신적으로 음미하는 것은 교류형태이며,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는 것은 핵심형태이다.
문제는 우리가 핵심형태에 얼마나 주목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외양으로 드러나는 형태(춤추는 즐거운 행위)와 교류 형태(정신적 만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흔히들 요즘을 PR시대라고 말한다. 모두가 드러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얼마나 잘 드러내는가가 출세의 지름길이다. 문제는 이런 PR만 난무하다 보면,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기 어렵게 된다. 평생동안 쌓아온 덕(내면 깊숙이 축적된 덕)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인간 혹은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적인 모습 내지는, 정신적 차원 몇 가지를 가지고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이러한 우리들 판단은 대부분 틀리다. 정작 중요한 ‘핵심 형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형태가 중요하다고 해서 영적 차원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저 “파랗다”고 말했다. 하늘은 그저 파란 그 어떤 존재성인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인간은 하늘이 왜 파란지 알고 있다. 과거의 인간은 추상적 면만 보았기 때문에 하늘이 그저 파란줄로만 알고 ‘파랗다’에 대한 사유만 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과학의 힘으로 하늘이 파란 이유를 알고 있다. 하늘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어진 것이다. 이제는 인간도 단순히 인간 그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이 이룩한 성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사유로 들어갈 수 있다.
성당을 건립하기 위해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철근, 시멘트, 모래, 물, 인력 등 다양한 에너지가 결집돼야 성전이 만들어 진다. 시멘트나 철근 등이 조금만 모자라도 그 성당은 삼풍 백화점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구성 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게 된다. 신체적, 정신적, 영적차원의 힘과 요소들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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