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팔아 시집 장가 이젠 옛말”… 빈익빈 부익부 심화
한우 판매가 예년 비해 110만원 급락
45만원이던 건초 가격 100만원 넘어
한우농가에 ‘희망의 빛’이 사라졌다.
지난 6월 26일 이명박 정부가 소고기 장관고시를 하면서 7월 1일 미국산 소고기가 시중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광우병 파동 이후 날로 떨어지는 소 값과 인상된 사료 값 때문에 시름이 늘어가는 농민들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열세 번 째 농민주일(7월 20일)을 맞아 시름에 잠긴 한우농가 농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들어보고 무한경쟁 속에서 한우농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본다.
▧ 낮아지는 한우 값과 늘어나는 한숨
미국산 소고기 판매가 시작된 지 9일째인 7월 9일, 전국 최고의 한우 품질을 자랑하는 강원도 횡성의 한 소규모 농가를 찾아갔다.
횡성군 공근면에서 24년 간 한우를 키우고 있는 심재광(마태오, 55, 원주 횡성본당) 김원정(라파엘라, 49)씨 부부는 영농후계자로서 부푼 꿈을 안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처음에 가진 부푼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경기침체와 전염병 등으로 인해 한우농사를 시작하면서 100여 마리를 키우던 그의 축사에는 이제 단 25마리의 소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몇 년 전 전염병이 돌아 소 30마리를 땅에 묻어야 했던 그는 요즘 하루하루를 깊은 한숨으로 보내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 판매와 더불어 한우가격 급락이 원인이다.
“330만원 주고 샀던 소가 지금은 120~130만원이에요. 근데 그 가격에라도 안 팔면 부담이 다시 우리 몫인데 어떡해요.”
그나마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때 이야기다. 광우병 파동으로 소고기 판매율이 떨어지면서 한우시장도 썰렁하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 당시에는 거래가 완전히 끊겨 하루에 한 마리도 팔리지 않은 적도 있다.
“최상 품질의 소들은 잘 나가죠. 근데 우리처럼 소농들이 키우는 소들은 높은 등급을 받기가 힘들어요. 그나마 예전에는 1등급도 잘 나오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들더라고요.”
소고기 등급이 비육소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암소를 주로 기르는 심씨와 같은 소농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심씨는 결국 한우 축산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빚은 계속 늘어나고 더 이상 한우로는 첼로를 전공하는 둘째딸과 관광학과를 다니는 셋째 딸을 비롯해 6명의 식구가 생활하기에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에 2억을 갚았는데도 아직도 빚이 남아있어요. 근데 한우를 계속 키운다면 빚도 같이 늘어나겠죠. 이걸 정리하고 나면 할 일도 없어서 더욱 막막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리해야지 어쩌겠어요. 미래가 없는데…….”
문제는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만이 아니다. 장기적인 우시장 침체와 더불어 농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소규모 한우농가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 있는 대농들은 1++, 1+와 같은 최상급의 품질을 생산할 확률이 높지만 평균 1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소농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한우 품질 고급화 지원’ 정책도 대농들을 위한 제한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소농을 위한 정책이 없는 실정이다.
올 초 급등한 사료 가격도 문제다. 한우농가에서 사용되는 사료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제운임료는 물론 국제곡물가가 상승하면서 사료가격도 인상된 것.
한 한우농가 농민은 “원래는 5톤 트럭에 45~55만원 하던 건초가 얼마 전에 80만원하더니 엊그제는 100만원이라고 들었다”며 “그렇다고 소들을 굶길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 ”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편 이미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소고기가 수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산 소고기의 유입은 시장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업계 측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오히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한우의 판매율도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 우리 한우, 우리가 책임지자.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말 현재 축산농가가 사육 중인 한우 및 육두는 모두 244만 8000마리라고 한다. 3월 자료와 비교하면 9.2% 늘어난 수준이다. 하지만 600kg 수소 기준 2007년 12월에는 476만 8000원이었던 산지가격은 올 5월 366만 6000원으로 하락했다. 이번 통계청 발표 자료에도 한우농가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는 늘어났지만 판매가격은 예년에 비해 110만원이나 급락했으며 사료 값도 인상돼 농가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하지만 희망의 빛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한우농가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우농가와 사단법인 전국한우협회(회장 남호경)의 요청으로 원산지표시제가 전면 실시되고 있으며 한우 관련 단체들은 시식행사를 통해 한우의 맛과 품질을 널리 알리고 있다.
교회 내에서도 이러한 노력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와 도시생활공동체가 공동으로 전개하고 있는 ‘암송아지 입식자금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 운동은 유기순환적인 자급퇴비와 안전한 소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사료 값 인상과 소 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에 도움을 주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진설명
▲24년 간 한우농사를 지어온 심재황씨. 그는 최근 한우 축산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더불어 사료값, 유가 인상으로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한우 품질 고급화 지원' 정책은 대농들을 위한 제한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소농을 위한 정책이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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