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믿음의 결정체 다섯 보석을 만나다
새벽 4시. 다시 ‘알라’ 소리에 잠을 깼다.
이슬람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을 들으며 이곳 아잔소리가 유난히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상의 이코니온, 현재 지명은 콘야(Konya)다.
이곳은 진정한 ‘이슬람의 도시’다. 아잔 소리에서도, 사람들의 복장에서도, 버스의 광고에서도 이슬람의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국교를 이슬람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은 터키 안에서 가장 이슬람 색채가 강한 곳이다.
너무나 큰 소리의 아잔이 귀에 울려오는 통에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앉아 기도를 하고 성경도 읽고, 샤워도 하는 등 부스럭부스럭 시간을 보냈다.
터키의 아침을 먹고 오전 11시가 다 돼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바오로 기념성당’이었다.
이슬람의 도시 안에 바오로 기념성당이라니. 터키에서 성당을 찾아보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신자가 거의 전무하고 순례객의 봉헌금 정도로 운영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온통 이슬람의 향기가 배어있는 도시에서 만난 사부의 성당. 오랜만의 첫사랑을 만나는 일보다 더 설레는 일이 아니겠는가.
성당에 들어서자 이탈리아 예수의 작은 자매회의 두 수녀님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준다. 세레나와 이자벨라 수녀님이다. 터키에 온지 12년이 지났다는 세레나 수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님을 뵌 것 마냥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곳이 이슬람 색채가 강한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위험한 면이 있어요. 터키에선 표면적으로 종교는 자유이지만, 선교는 금지돼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가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요.”
그는 ‘성당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 유일하게 터키에서 할 수 있는 ‘선교’라고 이야기했다. 그리해두었더니 이 강한 이슬람의 지역에 다섯명의 가톨릭 신자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귀띔해주었다. 기적이다.
이곳에 오기 전, 공부를 한답시고 바오로 사도의 전도여행을 담은 책, ‘위대한 여행’(정양모 신부 지음, 1997년)을 읽었다. 책에는 1992년 시민 180만명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아르메니아인 부부, 이탈리아 출신 부인 등 딱 세 사람 뿐이라고 했다. 헌데 2008년, 나는 자신의 발로 찾아들어온 다섯 명의 하느님의 자녀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대단한 믿음과 용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가족, 친구, 동료들의 눈총을 뒤로하고 성당 문을 들어서는 행동은 오늘날의 또 다른 ‘순교’다. 다섯 명의 신자들은 얼굴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했다. 레이스를 짜 상본을 만들고, 순례객에게 팔아 생계를 해결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코니온에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유다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설교하였다.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사도들을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사도 14, 1~6)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순교가 떠오른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랐던 그들. 과연 우리 한국교회 신자들의 믿음은 어떠한가. 나의 신앙은 혹시 ‘유리 같은 믿음’이 아닐까 돌이켜보자. 깨지기 쉬운 ‘믿음’은 터키의 가난한 다섯 신자들의 발 아래 한없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갔다.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14, 6)
그들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결코 포기하는 법 없이 사명을 끝까지 수행했다. 이코니온의 바오로 기념성당.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사명과 목적의식을 잊지 않도록 가슴을 추슬러본다. 달리다 지쳐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걸으리라.
안개처럼 흐려졌던 머릿속이 기분 좋게 맑아졌다. 짧은 만남 속에서 인생을 배운다.
-이슬람의 도시에서 믿음을 묵상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사진설명
▲첫사랑을 만난듯 설레는 사부의 성당, 성 바오로 기념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성 바오로 기념성당의 세레나 수녀와.
▲기념성당 외부 모습.
▲터키로 피난온 이라크 여성과 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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