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시편 130).
여덟 번째 청년도보성지순례… 그 250km 장정의 걸음들을 뒤돌아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준비를 했다. 이번엔 교구 내 성지 중심 청년도보성지순례에서 벗어나 대전교구 성지를 함께 순례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첫 출발지 갈매못 성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봉사자들과 참가자들은 조금은 어색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첫 날을 맞이했다. 순교자들의 신앙정신을 배우며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를 바친 후 성지소개를 받고 성지참배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8기 참가자들의 힘찬 구호 “주님을 향하여! 젊은이답게! 함께 달리자! 청년 신앙 파이팅! 청년도보 파이팅!”이란 전체구호를 외치며 대장정이 시작됐다. 참가자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각오와 목표를 세우고 힘찬 걸음을 내딛었다.
첫날 도보 구간은 가장 짧기에 아무 무리 없이 목적지인 광천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데 짧은 거리이고 첫날인데도 벌써 발이 아프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작은 고통들이 생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 작은 고통은 배움의 시작이었다. 동료의 물집을 터뜨려주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형제들이 있었다. 결코 이 길은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길이란 것을 첫 번째로 배운다. 또 광천성당 신부님과 신자들이 정성을 다 해 마련해 주신 따스한 밥과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장소는 힘겨운 도보순례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사랑과 격려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두 번째의 배움은 버림의 배움이다. 걸을수록 처음에 지니고 다녔던 가방 속 물건들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물이 부족할까 싶어 물통을 2∼3개씩 지니고 다녔는데 그것이 얼마나 부담이었는지 모른다. 이것만은 꼭 챙겨야지 했던 수많은 것들이 점점 나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는 것을 두 번째로 배웠다.
일정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차 몸은 피곤해지고 지칠 대로 지쳐 신경은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나고 동료보다는 나 자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형제의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형제의 고통을 함께 걱정해주고 기도해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 후부터는 자신만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형제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를 배운다. 발이 아파 못 걷는 이를 위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짐을 대신 들어주는 형제적 사랑을 배웠다.
그 힘든 도보성지순례를 왜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와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 힘든 순례의 길은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세속적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성취하고 싶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짐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메고 다니던 가방마저 벗어버리는 가난을 배운 사람도 있다. 한 모금의 물에, 평소 고마움을 몰랐던 자신의 발에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함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냥 스쳐지나간 것들,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배우게 된다.
이번 도보순례에 참가한 청년들이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따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가는데 있어서 진정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주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 곧 나의 소리를 주님께 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보성지순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총을 내려주시는지 깊이 체험했다. 우리들은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무사히 목적지까지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그리고 이번 8기 참가자들을 위해 물적으로 영적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깊은 사랑과 배려를 해주신 대전교구 성지 신부님과 본당신부님, 수녀님, 신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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