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있었지만… 수도자여서 행복했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으로 그의 얼굴은 빛났다.
‘인생은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이라 했던가. 그런데 수도자로서 봉헌의 삶을 살아온 세월이 70년이니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도 서원 70주년을 맞은 벨트뷔나 수녀(Bertwina Caesar, 94,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는 “수도자로서 행복했다”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라고 감사했다.
독일인 수도자와 한국교회의 인연은 1937년 시작됐다. 독일 툿찡 모원에서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돼 원산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며, 이듬해 6월 첫서원, 41년 종신서원했다.
“당시 독일 모원에는 수도성소가 넘쳤어요. 필리핀, 브라질, 한국 세 곳으로 파견됐는데, 한국에 가라는 수도회의 뜻에 “예”라고 순명하며 이곳에 왔습니다. 여기서 서원을 하고 수녀로서 삶을 시작했기에 늘 제 자신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행복했지만, 그에게도 잊지못할 고통의 시간이 있다. 해방 후, 소련군에게 체포돼 1949∼1954년 평안북도 강계 ‘옥사독’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이끌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며 압록강을 넘나드는 ‘죽음의 행진’이란 피난길을 걸어야 했다. 그는 당시 수용소에 수감된 사제·수도자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다.
“수용소에 갇혀 호미 하나 쥐고 농사를 지어야했는데, 항상 배가 고팠어요. 옥수수로 주린 배를 채우고, 그래도 배가 고파서 나무 열매도 따먹으면서 그렇게 버텼죠.”
처참한 나날이었지만 벨트뷔나 수녀는 그 고통의 현장을 찾아가고 싶다.
50여 년 전, 수용소에서 풀려나 본국에 송환된 후 다시 한국땅을 밟았을 때도 그런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안배는 훌륭한 것”이라면서 “지난 날을 돌아보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며 도움을 주셨다”고 감사한다.
오늘도 오전 5시 그의 수도생활은 시작된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을 따르며 하루를 봉헌한다. 기도 후, 뒷동산에 올라 풀도 뽑고, 물길도 살피면서 일하고, 또 공동체의 지향에 따라 기도한다.
“수도생활이란 행복한 삶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힘을 얻고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아직도 다른 수도가족들과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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