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을 뜨겁게 하소서”
오늘 뽑은 말씀사탕에서 한 구절이 튀어나왔다.
“서로 뜻을 같이 하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로마 12, 16)
‘터키’라는 나라에 익숙해지고 순례의 기쁨에 빠져갈 무렵, 다시금 나를 채찍질하는 사부의 말씀이다.
지금부터는 신약성경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들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초대 그리스도교가 크게 확장되는데 큰 역할을 한 요한묵시록의 일곱 교회. 오늘 방문한 곳은 그 중 ‘라오디케이아’ 교회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 15~17)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시다. 당시 라오디케이아는 지역적 특성의 유리함으로 무역업, 의류제조업, 고대의학 특히 안약 등이 유명했다고 한다. 경제적 풍요로움 때문인지 이곳 신자들의 미지근한 신앙은 크게 질책을 받았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을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가난했던 것이다.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 17)
말씀은 또 다시 한번 그들을 질책한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은 하느님과의 약속인 신자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했다. 엄중한 말씀은 다시 묵시록의 저자를 통해 해결방법까지 친절하게 제시하신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묵시 3, 18)
여기서 금은 고통을 통한 단단한 믿음이다. 흰옷은 새로운 인간, 즉 회심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안약은 하느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천주교는 참 점잖은 종교인가 봐. 자기들 교회에 좀 오라는 이야기나 그들의 종교에 대해 한 번도 못 들었어.”
가톨릭 신자들은 타 종교인들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선교하지 않는 우리 가톨릭의 미지근한 태도를 이제 그만 우리 세대에서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 내 모든 구성원들 즉,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모두 반성해야 할 것이다.
흔히 결혼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오는 것처럼 수도생활도 비슷한 점이 많다. 17년 넘게 수도생활을 해온 나에게도 그야말로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시기가 있었다. 브라질에서 선교할 당시, 내 별명은 여러 가지였다.
그 중 하나가 ‘김사전(Dicionario Kim)’이었다. 처음 삼년 정도는 선교를 하기 위해 정말 혼을 다해 언어를 공부했으니 말이다. 내 옆구리에는 꼭 사전이 끼워져 있었다.
정말 뜨겁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한국에 돌아올 때쯤 나는 너무나 미지근하게 변해있었다. 그 전의 열정이란 온데 간데없고 언젠가부터 내 사전에는 뽀얀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내게 아니 우리에게 당부하시고 강조하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묵시 3, 22)
이제는 옆구리에 사전 대신 체온계를 꽂고 수시로 온도를 재어봐야겠다. 하느님에 대한 나의 열정은 뜨거운지 찬지 아니면 미지근한지를 말이다.
-나의 신앙 온도를 묵상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요한의 묵시록
일곱 교회 중 하나‘라오디케이아’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며, 사도 요한이 저자로 여겨져 온 신약성경 유일의 묵시문학 작품. 요한의 묵시록은 유다계 묵시록과는 달리 현재의 고통의 의미를 역사의 신적인 계획에 의해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현재를 이해한다.
요한묵시록에는 일곱 교회(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가 등장하는데 이 교회들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가리키며 동시에 일곱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통해 전체 교회를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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