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손잡고 이 길 함께 걸으리
부부가 같은 일을 하는 경우? 드물진 않다.
직업 탓에 성격도 생활방식도 비슷할 수 있고 또 직장에서 일을 하며 부대끼다 사랑에 골인하고 연을 맺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백승관(안드레아. 49) 최종인(데레사. 46) 부부도 그렇다. 헌데 좀 독특하다.
두 사람은 ‘사무장’이다. 남편 백씨는 수원교구 죽산성지, 아내 최씨는 죽산본당에서 일한다.
성당 일은 아내가 먼저다. 죽산본당 설립 이듬 해인 1982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최씨는 무보수 봉사로 성당에 나왔다. 백씨가 뒤를 따랐다. 성실하고 과묵한 성격의 백씨를 눈여겨보던 당시 죽산본당 주임 최재필 신부는 예비신자였던 그가 성당에서 일하도록 배려했다. 1984년 일이다.
정식 사무장 발령은 한참 뒤여서 기록상 차이는 있지만 최씨가 23년, 백씨가 25년째 성당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결혼은 언제? 대학생과 군에 간 아들을 둔 중년 부부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신혼부부 마냥 부끄럽다는 표정이다.
“그냥 성당에서 늘 얼굴 보며 지내다 결혼하게 됐어요. 생각해 보세요. 둘 다 매일 성당에서만 사는데 다른 사람 볼 기회나 있었겠어요?(웃음)”
부부 사무장. 쉽지만은 않았다.
“하느님께 죄송스럽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오해 때문에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성당 문지기로 때론 성당 재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신자, 신부들과 부딪쳐야하는 일이 고되다. 부부가 같은 어려움을 함께 겪으니 가슴앓이는 곱절.
본당 신자들의 오해로 힘들었을 때는 그런 자식 모습 싫다며 어머니마저 얼굴 마주치길 꺼려했던 적도 있었다. 남편 백씨는 주임신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일을 그만둘 준비를 했단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죠. 늘 그런 마음으로 근무했습니다. 일곱 분의 신부님을 모셨는데 바뀌는 분마다 맞춰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에게 아내는 “오히려 신부님을 더욱 정성으로 모시는 것이 더 옳지 않겠냐”며 항상 힘을 보태줬다. 그렇게 밀어주고 당겨 줬다.
부부에게 사무장은 직업이 아니었다. 부부로 만난 것도 사무장으로 일하게끔 하신 것도 주님께서 내린 소명이라 생각했다.
“두 분 모두 교회를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노력하지요. 흠 잡을 데가 도무지 없어요. 우리는 그런 생활 떠밀어도 못합니다. 타고난 성품의 사람들이예요. 이런 분들이 성당에서 일해야 교회에 도움이 되죠.”
부부 사무장을 바라보는 신자들. 칭찬 일색이다. 죽산성지 전담 이용남 신부는 백씨를 ‘천사’가 아니라 ‘천신(天神)’이라고까지 한다.
“작년까지 경제적으로 좀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아이들 공부시키며 살고 있고 지금은 참 편하고 좋습니다. 그동안 해오던 일이니까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늘 그랬듯이 앞만 보고 갈 겁니다.”
일과가 끝난 시간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내일 비가 많이 온다며 걱정하는 신부에게 비 피해 없도록 준비했지만 다시 살펴보겠다며 안심시킨다.
백씨가 사무실을 나선다.
“얼마나 좋나요. 일하는 곳에서 언제 어느 때나 기도하고…. 우린 복 받은 거죠. 일이 곧 신앙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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