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폭우 속 미사 두달째… “너무 힘들어요”
정밀진단 결과 “성당 천정 붕괴 위험, 출입금지”
300여 명 노인 신자들 무더위 속 야외미사 견뎌
특산물 복분자 와인 제작 판매로 재건축 구슬땀
장마가 지나가고, 휴가철이 본격 시작됐다. 신자들은 시원한 여름, 보람된 여름을 위해 피정의 집으로, 복지시설로, 휴가지로 떠나고 있다.
하지만 올 여름 휴가 계획을 아예 접은 공동체가 있다. 그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올해로 80주년을 맞는 경사로운 공동체, 하지만 그 어느때 보다도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는 전주교구 신태인 본당(주임 김봉술 신부,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을 7월 25일 찾았다.
급하다. 당장 미사를 봉헌할 곳이 없다. 야외 미사를 봉헌한지 두 달째.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땀 줄줄 흘리며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야, 십자가 고통을 묵상하면서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미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비라도 오면 그늘막 위에 덮은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강론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게다가 군데군데 비닐 찢어진 틈새로 물이 떨어져 신자들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미사를 해야 한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야외 미사 장소 바로 옆 4차선 도로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미사의 맥이 툭툭 끊어진다.
신태인 성당 건물은 지난 5월 정밀 진단 결과,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천정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 성전을 지은 것이 1954년 이니 이미 50년을 넘긴 건물이다. 그동안 수차례 보수에 보수를 거듭 했지만, 임시 처방 만으로는 건물 생명 연장에 한계가 있었다. 김봉술 주임 신부는 신자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계속 성전 미사를 고집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성전 바로 옆에 대형 그늘막을 치고 그 위를 비닐로 덮었다. 기존 성전에는 출입금지 띠가 쳐졌다.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분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주일 미사 시간만이라도 편안함을 선사해 드리고 싶은데, 성당에 와서까지 힘들게 미사를 봉헌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성전을 보수해 어르신들이 편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
김봉술 주임신부가 긴 한숨을 내쉰다. 썩은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지붕을 교체하고, 냉난방 시설, 조명 시설까지 바꿔야 하는 대공사가 막막하기만 하다. 골조만 남기고 모든 것을 교체하는 대공사다.
신태인 성당은 지역의 영욕과 함께 해왔다. 평야 지역에 위치한 신태인읍 일대는 한때 3만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번화한 곳이었다. 그래서 신앙 공동체도 일찍부터 들어섰다. 하지만 이농현상으로 인해 현재 읍내 거주 인구는 8000여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매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 300여명도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신태인 본당이 전국적으로 유래가 없는 65세 이상 노인 여름 캠프 ‘흙사랑 자식사랑 어르신 캠프’를 별도로 매년 마련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 재건축기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에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무너지는 성전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노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지역 특산물이 복분자인 것에 착안, ‘복분자 와인’ 제작에 직접 나섰다. ‘하느님의 술’ 와인을 직접 만들어 성전을 짓겠다고 나선 것. 신태인이 오랜 역사를 지닌 공동체인 것을 자랑한다는 의미에서 상표도 ‘교우촌 복분자’로 정했다. 기도하며 만드는 복분자 와인은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현재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신태인 공동체의 복분자 와인 제작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나이 많은, 가난한 농촌 신자들이라고 얕보지 마라는 오기도 엿보인다. 그만큼 신앙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그 열정의 밑바닥에는 올해로 80주년을 맞는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들도 어려운 상황인데…. 신자들은 80주년을 맞아 동전 모으기 운동을 전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외적인 성전을 짓기 전에 먼저 마음의 성전을 짓겠다며 성지순례, 묵주기도 등 다양한 신심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봉술 주임신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지역 노인들을 위한 센터를 마련하고, 집고쳐주기 사업 등을 통해 본당이 지역 복지의 중심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수년전부터 각종 연주회와 무용 등 다양한 문화 공연을 성당공간을 지역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해 오고 있기도 하다. 신태인 성당이 이대로 주저 앉을 수 없는 이유다. ‘지역 복지의 중심’이라는 꿈이 있기에 성당은 보란듯 다시 서야 한다.
사목회 이익규(스테파노, 56) 회장은 “80년 역사의 신태인 본당, 그리고 54년 역사의 신태인 성당은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상징적 존재”라며 “우리 힘으로 과거 선조들이 지켜온 신앙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웃음이 잠시 스쳤던 이 회장 얼굴에 다시 그늘이 드리운다. 김 신부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는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신부님, 우리 어떻게 하지요”라고 묻는다. 김 신부가 “은행 대출이라도 받아야지요…”한다.
김봉술 신부가 야외 성전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본다. 장마 끝 열기가 성전(?) 안에 가득하다. 김 신부는 한참동안 그렇게 말없이 앉아 있었다.
※ 신태인 본당 후원 및 복분자 와인 구입 문의 : 신태인 본당 (063)571-8201~3, 김봉술 주임신부 011-496-5485.
※ 도움 주실 분 : 농협 517153-51-008817 예금주 천주교유지재단
사진설명
▲신태인본당 성전은 지난 5월 사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수차례 보수를 거듭했지만 건물 생명 연장에 한계가 있었다. 신자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 성전에는 출입금지 띠가 쳐졌다.
▲김봉술 주임신부가 야외 임시 성전에서 제대를 향해 기도를 바치고 있다.
▲대형 그늘막을 치고 비닐로 덮은 임시 야외성전에서는 비바람을 막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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