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포함한 모든 삼라만상은 나고 먹고 자라고 혼인하고 아옹다옹 살다가 병들고 죽는다. 이 과정은 태초의 시간(Α)부터 종말의 시간(Ω)까지 거듭되는 흐름이다. 보편교회는 이런 인간 삶의 중요한 7가지 과정을 성사(聖事)로 제정하고 있다. 이는 삶의 과정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은총임을, 더 나아가 생(生)에서 멸(滅)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음을 표현한다.
어떻게 하면 고해성사 안에서 은총을 체험할 수 있을까?
고해성사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내가 상대를 어떤 이미지로 보는가에 따라 대화의 질과 양이 결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깊고 긴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고해성사의 대화 상대는 사제가 아니라 사제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고해자가 하느님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가에 따라 고해 내용의 깊이가 결정된다고 본다.
그분을 엄격하고 무서운 판검사나 감시자로 생각한다면 최대한 자신을 방어하고 변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고, 그분을 돌아온 탕자의 비유(루카 15장)에서 종처럼 사는 맏아들은 물론 가출한 작은 아들도 다 품에 안는 인자로우신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 보일 것이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첫 걸음은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은 악화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순간 이미 반은 치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육체의 병은 자신의 자각증상(두통, 어지러움, 구토, 호흡곤란 등)을 느끼고 의사에게 진단을 받는다. 영적인 병도 자각증상이 있다. 주위 사람과 갈등관계가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고, 화내고, 세상에 혼자인 듯 우울하고 등등. 우리는 이럴 때 영혼의 치유자이신 하느님께 나아간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마태오 22, 37∼38). 이 말씀에 따라 자신을 하느님이라는 큰 거울에 비추어 본다(성찰). 하느님을 주님으로 여기고 그분이 보여주신 뜻을 사랑하였는지? 성당에서만 생각하고 삶 속에서는 하느님 없이 살았는지? 자신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추려고 자신을 밀어붙이며 살았는지?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로 살았는지? 내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그들의 행동까지 정해주며 살았는지? 성체 앞에서 성찰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타인과 하느님의 탓은 작아지고 내 탓은 점점 커짐을 깨달을 것이다. 마치 나이 많은 사람부터 손에 쥔 돌멩이를 놓고 돌아갔듯이(요한 8, 9).
하느님과 이웃이 자신을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느님을 아프게 하고 이웃을 아프게 하고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하느님과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한 것이 아프고 후회스럽다(통회).
이제 자신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는다(정개).
사제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씀 드린다(고백).
하느님은 어버이시다. 자신의 부족함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자녀를 용서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루카 11, 13)
새로운 삶으로 하느님께 나아간다(보속).
이제 하느님과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자유롭다. 화나지 않는다.
나는 사제로서 많은 고해를 듣는다. 마음을 닫고 의무적이며 자기방어적인 고해는 30초를 들어도 아주 힘들다. 그런 고해는 하느님도 힘드시고 고해자도 힘들 것이다. 나는 한 사람에게 4시간 정도 고해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진솔하게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말하였고 나는 들었다. 고해가 끝났을 때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느님도 기뻐하시고 고해자도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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