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형제입니다
속죄의 공간에서 미사 손에 손잡고 주님 평화 나눠
무거운 출발
교도소.
영화에서나 보던 곳. 나와는 상관없는 곳. 어둡고 슬픈 표정만이 존재하는 곳.
교구 교정사목전담 김기원 신부와 함께 여주교도소를 찾기로 약속한 날,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걱정이 많아지니 행동도 굼떠졌다. 집을 나서니 구름이 하늘을 답답하게 메우고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결국 약속 시간을 넘겨버렸다. 김신부는 지각한 기자에게 화를 냈다. 교도소 첫 방문에 대한 부담에 지각을 했다는 자책까지 더해지면서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걱정하는 기자를 위로하기는 커녕 지각을 빌미로 더욱 긴장시킨 김신부가 원망스러웠다.
사랑을 배우다
갖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어느새 교도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김신부는 여사로 향했다. 예닐곱 명의 봉사자들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미사 준비를 하는 동안 재소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안녕하셨어요? 지난주에는 왜 안 오셨어요?”
“응, 다리가 좀 아팠어. 못 보는 사이 더 예뻐졌네.”
봉사자와 재소자간의 살가운 대화가 오갔다. 그제야 비로소 김신부가 화를 낸 이유를 깨달았다. 일주일에 단 한번 봉헌되는 미사 그리고 김신부와 봉사자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그래서 그만큼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을 김신부는 알고 있던 것이다.
미사가 끝난 후 봉사자들이 준비해 온 떡과 음료수를 먹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재소자들은 자꾸 남길 생각만 했다.
“불교에서 너무 많이 얻어먹어 미안해서 이번에는 우리가 나눠주고 싶어요. 교사님, 이거 방에 가져가서 함께 먹어도 괜찮을까요?”
승낙을 얻은 재소자들은 환하게 웃어보였다. 서로를 생각하며 없는 중에도 가진 것을 나누는 모습은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있었다.
형제를 만나다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김신부는 남사 강당을 찾았다. 강당에서는 미사준비가 한창이었다. 여사와는 다르게 모든 미사 준비를 재소자들이 직접 했다. 성가대는 물론, 해설, 독서, 복사까지 재소자들이 담당했다.
입당성가가 울려 퍼지고 미사가 시작됐다. 교도소에서 봉헌되는 미사는 여는 미사와 다를 바 없이 경건하고 진지했다. 하느님의 용서와 은총을 갈망하는 듯 복음 한 글자, 강론 한마디 놓칠세라 숨죽인 재소자들의 열기는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 악수와 포옹으로 평화의 인사를 하는 모습은 가장 진실된 ‘형제’를 묵상하게 했다.
우리와는 다를 것 같던 사람들의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인상깊어하는 기자에게 김신부가 말을 건넸다.
“나는 이 친구들이 무슨 죄를 짓고 이곳에 오게 됐는지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하느님 이름으로 만난 이상 그저 나와 다를 바 없는 형제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 죄인인데 내가 이들의 죄를 비난하고 욕할 수는 없죠. 난 그저 형처럼, 친구처럼 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합니다.”
돌아오는 길
교도소.
영화에도 나오는 곳. 내 이웃이 머무는 곳. 작은 나눔과 희망도 존재하는 곳.
교도소를 나서며 또다시 행동이 굼떠졌다. 걱정으로 나섰던 곳이 떠나기 아쉬운 곳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겪으며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오늘 만난 재소자들뿐 아니라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편견과 싸우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봉사자 김정자(율리아, 66,여주본당)씨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며 “색안경을 벗고 마주하면 우리 이웃이 보인다”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비가 올 듯 무겁게 깔린 구름은 어느새 걷히고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죄인 보듬어 주신 크신 사랑에 감사
천주교 생활관 반장 라이문도씨
여주교도소에는 작은 교우촌(?)이 있다. 천주교 신자들끼리 모여 생활하는 ‘천주교 생활관’이 그곳. 천주교 생활관 반장 라이문도(43)씨를 만나 그곳에서의 생활과 신앙 이야기를 들었다.
“모태신앙을 가진 제가 이곳에 있어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하느님께 부끄럽지 않은 자녀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이문도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짐했다. 이곳 여주교도소에 들어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라이문도씨. 어려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미사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빠짐이 없었다.
여느 청년들이 그렇듯 대학생이 되며 잠깐 냉담을 하긴 했지만 한 번도 하느님을 잊고 산 적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한 번의 결혼 실패를 겪고 관면혼배를 통해 두 번째 배우자를 만날 때까지도 그의 손에는 항상 묵주가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개신교에 다니는 아내와의 마찰과 바쁜 직장 생활 탓에 또다시 신앙생활에 소홀할 때쯤 유혹이 찾아왔다.
밖에서 식사할 때도 성호경 긋기를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그는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7년째 복역 중이다. IMF를 시작으로 경제상황이 계속 나쁘게 돌아가자 그만 세상의 유혹과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라이문도씨를 살게 한 것은 신앙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실한 어머니를 보며 익힌 기도습관이 지금 그를 다잡게 도왔다.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넌 행운아’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셔주신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저를 진심으로 뉘우치도록 이끌어주셨죠.”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진심으로 참회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기 위해 천주교 신자들끼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천주교 생활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그 안에서 김기원 신부가 짜준 일주일 단위의 생활계획표대로 기도생활과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러 본당에서 찾아와주는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레지오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바오로 해를 맞이하며 자신도 하느님 사업에 보탬이 되고 싶어 공장이나 교육장 등지에서 만나는 냉담중인 동료 수감자들에게 함께 성당에 나가자고 권유한다고도 전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그를 천주교 생활관 반장으로 만들었다.
“저같이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봉사자 어머님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 손을 맞잡고 기도해주실 때마다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느낍니다. 제가 걷는 걸음걸음마다 주님께서 보듬어주심을 느끼고 무한한 사랑을 경험합니다. 훗날 제가 이곳에서 나가면 그 사랑 모두 보답하고 싶고 꼭 그렇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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