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도와주세요… 조금만”
며칠 동안 피곤하더니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그에게 복부에 종괴가 있으며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병명을 통보했다.
베트남에서 온 노로안훈(23)의 이야기는 다른 이주노동자의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5년 5월 입국해 기계공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그가 백혈병에 걸리기까지의 과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학교에서 1년 동안 기술을 배웠어요. 가난해서 학기를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요.”
한국에 오면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도 한국행을 결심했다.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쌀농사를 지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님과,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2005년 5월, 한국에 도착했다. 처음 그의 일은 술술 풀리는 듯 했다. 기계공장에 취업이 됐고, 버는 돈 85만원 중에서 40만원은 부모님께 꼬박꼬박 부쳤다. 사랑하는 아내 티탓(23)도 만났다. 한국의 한 음식점에서 조촐한 결혼식도 올렸다.
그리고 올해 3월. 그에게 ‘백혈병’이라는 병명이 선고됐다.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고, 돈을 부칠 수도 없다. 병원비와 약값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솔직히 두렵고 무서워요. 전화로 제 병명을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이 너무 많이 걱정하세요. 저를 보고 싶어도 오지 못하시고 ‘무조건 한국에서 병을 고쳐야한다’는 말씀만 하세요.”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야간근무를 하고 돌아와서는 간병에 여념이 없다. 행복한 신혼의 단꿈을 접은 지는 이미 오래다. 그나마 일거리도 없는 날에는 방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월급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한 번도 부모님과 형을 원망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도와줄 수 있어 기쁘기만 하지요. 아내에게 가장 미안해요. 걱정만 끼치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노로안훈은 ‘무섭다’면서도 조용히 웃기만 했다. 검사비와 약값, 앞으로 있을지 모를 골수이식수술 등 헤쳐 나가야할 어려움은 한 가득이다. 베트남어로 말했던 노로안훈이 문득 선한 웃음을 지으며 한국말을 꺼냈다.
“제가 한국말 조금밖에 못해요.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조금만 도와주세요. 저를 조금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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