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정신은 동등한 가치 지녀
인간은 정신·육신 담겨 있는 ‘무의식’으로 행동
하느님 주신 토대 안에서 영과 함께 조화 이뤄야
육신과 정신이 있을 때, 과거 우리는 오랫동안 육신을 정신보다 낮은 수준의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인간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늘 육신, 감각, 감관이 잘못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생명력이 가득한 몸이다. 육신은 결코 정신보다 낮은 수준의 것이 아니다. 육신은 죄의 원인이 아니다. 우리가 눈과 귀를 두 개씩 가지고 있듯이, 정신과 육신은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은 고귀한 것이다. 동시에 고귀할 뿐만 아니라, 차별성도 없다. 육신 없는 정신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육신을 정신보다 낮은 차원의 것으로 생각한다든가, 육신을 죄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몸은, ‘생생한’ 살아있는 몸이다.
그럼 정신은 어떤가. 과거 수천년 동안 정신은 이성, 의식과 같은 용어와 동시에 혼용되어 왔다. 그 기능으로 볼 때, 정신의 기능은 뭔가 과거의 것을 ‘기억해 내는 것’에 있다. 정신의 또 다른 기능은 옳건 그르건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있는‘상상’이다. 또한 정신은 과거를 기억할 뿐 아니라 미래를 앞질러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신의 기능 중에는 또 전체성을 한번에 느끼는, 즉 첫인상과 유사한 직관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신을 이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문제는 정신의 다른 면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실생활에서 정신을 우리의 현실에 한정해 사용하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한 신자가 성직자와 상담을 한다고 가정하자. 신자는 사제에게 “고민이 많아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안 오고, 아주 죽을 맛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이런 상태에 빠져 있는지, 왜 잠이 오지 않는지, 왜 고통스러운지 등등을 생각해야 한다.
육신적인 차원으로 비유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간암 혹은 대장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환자는 간암과 대장암에 이르기까지 오랜 과거를 안고 있다. 잘못된 식생활과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 과도한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와 흡연 등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다. 육신이 병들 때는 분명 원인이 있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심한 열등감 등 정신적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과거 오랜 역사 속에서 누적되어온 산물이다. 인간은 지금 당장 현실 앞에 닥친 문제에 대해 늘 생각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오랜 사건들의 결과에 의해 결집되어 지금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인간 정신 문제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이 있게끔한 무의식이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에도 무의식으로 먹고, 걸을 때도 무의식으로 걷는다. 밥을 숟가락에 떠서 입에 가져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는 사람은 없다. 걸을 때 한 발 한 발 의식하면서 걷는 이는 없다. 그저 오랫동안 해온 것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무의식 안에는 육신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함께 담겨 있다. 정신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정신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하고, 상상하고, 예견하여 직관하는 수준을 넘어 순수 영(하느님)과 관계하는 인간 영(초월적 의식)의 역할까지 포함한다. 결국 정신의 이런 다양한 역할을 정신과 육신, 즉 정신과 생체의 다양한 기능을 조화시키고 리드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 과거 인간은 이 조화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육신을 낮게, 정신을 높게 취급했다. 육신과 정신 중 어느 하나가 더 가치 있고, 어느 하나가 더 열등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토대 안에서 육신과 정신은 똑같은 비중으로 중요하고, 결국 조화를 이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신과 영의 조화다. 우리가 육신과 정신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듯, 영과 정신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에너지 차원에서는 순수 영이 가장 높고 다음은 인간 영 정신, 육신적인 단계로 규정할 수 있으나, 영 정신 육신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신과 육신의 조화도 이뤄야 하지만, 정신과 영(靈)의 조화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토대를 제대로 쓰는 것이다. 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쉽게 내리지 못한다. 정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그 성찰의 깊이가 만만찮다. 하지만 나는 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이라는 것은 궁극적 의미와, 궁극적 목적을 추구하는 힘(에너지)이다. 영은 인간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것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다.
다음 주 부터는 이 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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