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 세계에서 주님 음성 들어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행복했습니다. 훌륭한 선배 신부님들을 본받아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사제가 되어 가겠습니다.”
지난 7월 27일 서울 강북구 수유3동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박민서 신부(서울대교구 청각언어장애인사목 전담)를 만났다. 2007년 7월 한국교회의 큰 관심 속에 아시아 첫 청각장애인 사제로 서품을 받은 박신부는 지난 일 년간 어떤 목자로 살아왔을까.
박신부는 8월 1일부터 열리는 청각장애청년 도보순례 준비로 분주했다.
“청각장애 청년들이 도보순례에 도전하는 건 처음이에요. 배론성지에서 용소막성당까지 산길을 걷는 여정인데 날씨가 더워 걱정이죠. 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인 만큼 기대도 큽니다.”
일정이 빡빡하다. 도보순례를 시작으로 8월 중순까지 여름캠프와 미사, 강의가 이어진다. 올 여름 만큼이나 지난 일 년도 하루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매주일 12시, 2시 청각장애인과 부모들을 위한 미사에 지난 해 12월부터는 평일미사(매주 수요일 오후 2시)도 봉헌하고 있다. 평일미사 참례자가 늘어 요즘은 50명 가까이 된다. 또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는 미사와 성시간도 갖고 매주 한번 성경공부도 담당하고 있다.
매달 한 번 이상은 지방을 찾아 미사도 봉헌하고 경기도 안성에 있는 청각장애 노인 양로원도 방문한다. 또 애화학교, 삼성학교에서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과 종교교육도 하고 있다.
새로운 사목영역도 개척중이다. 바로 청각장애를 가진 재소자들을 찾는 일이다. 매달 한번 교도소를 찾아 교리교육을 하고 미사를 봉헌한다. 올 12월 중순에는 청각장애 재소자 3명이 세례를 받는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 하지만 그저 행복하다.
“청각장애 신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게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힘들지 않아요.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역할인걸요.”
‘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 전시회’에서 수화통역 가이드를 자청한 건 일 년여 사제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청각장애인들도 전시회를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회 관계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가이드는 따로 없고 안내설명서만 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긴 대부분의 전시회가 장애인을 위한 배려에 미흡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청각장애인은 언어능력이 약해 안내 설명서나 전시회 푯말로는 뜻을 이해하기 벅차요. 그래서 수화 가이드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4월 11일부터 네 차례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장을 찾아 청각장애인들을 안내했다. 수화로 이스라엘 역사와 사해사본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전시관을 한번 둘러보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주의 깊게 설명을 듣는 장애인들의 모습에 힘을 냈다.
“신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됐다는 게 기뻤어요.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는 모습을 보며 사제로서의 삶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청각장애인 사목 전담이라는 직책이 부담될 때도 있다. 교회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아직도 너무나 많음을 체험할 때, 그리고 신앙생활에 대한 장애인들의 열망이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알 때 더욱 그렇다.
“미국의 경우 비장애인 담당 사제는 대부분 수 십 년 가까이 청각장애 신자들과 함께 합니다. 때문에 청각장애인들도 사제와 함께 선교사, 말씀의 봉사자, 교리교사, 성체분배자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죠. 2~3년 정도 사목하다 새 임지로 떠나는 우리나라와는 다릅니다.”
청각장애를 비롯해 다른 장애인들을 위한 사목에 힘쓸 전문성을 가진 사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박신부의 조심스런 바람이다.
일 년 전. 서울 번동성당에서 봉헌한 첫 미사 때 박신부는 “예수님이 타고 갔던 당나귀처럼 예수님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을 증거 하며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사제로 살겠다”고 했다.
일 년 후. 박신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훌륭하신 선배사제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들을 거울삼아 겸손하고 기도하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사제가 되기 전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