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말하는 ‘고해성사의 은총’
“진실된 통회로 은총 체험할 것”
어떤 나라에 임금님이 한 대신의 장례식에 사람들을 소집하였다.
사람들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장례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 대신의 관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줄을 지어 들어가는 대신들과 유지들은 대관절 어떤 대신이 누워있는가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관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 관 속을 들여다 본 사람마다 깜짝 놀랐다. 그 관 속에는 자신들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 관 속에는 거울이 들어 있어서 들여다보는 사람의 얼굴이 비쳤던 것이다. 관 속을 들여다본 순서가 끝나자 임금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이 본 관 속에는 거울이 들어 있어서 각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저 관 속에 들어가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저 관 속에 들어가 있어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은 삶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새로 시작하니까 새롭고 깨끗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패와 부조리는 새로 사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한번 죽은 후의 삶이니까요.”
- 최형락 신부의 ‘종교예화’ 중에서
사람이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나야 새 삶이라 하겠지만,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그 동안의 죄에서 벗어나 새 삶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해 성사를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회를 진정으로 하는 사람은 고해성사의 은총을 더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통한 새로운 결심은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되풀이 되는 죄일지라도 낙담하지 말고 지속적인 반성과 고해성사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묵은 죄를 깨끗이 씻고 난 후에 세상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예전의 내가 아닌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은총은 하느님의 죄 사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고해성사의 기쁨입니다.
사목생활을 하면서 사제의 필요성을 가장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 임종을 앞둔 이들과의 만남입니다.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나게 될 이분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진실한 통회의 고해성사는 참으로 경건하고 엄숙합니다.
모든 사제들은 한밤중에 걸려오는 전화소리를 듣는 순간, ‘혹시 임종이 아닐까…’ 하고 긴장하게 됩니다. 때론 의사의 견해를 통해서 볼 때, 이미 숨졌어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사제를 기다리는 그 어떤 힘에 놀랍다고 하기도 합니다. 사제와의 만남 후에야 평안하게 눈을 감고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잠자듯이 이 세상과 하직하는 신자를 보기도 합니다.
마지막 고해성사는 그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 동안의 삶을 정리하여 깨끗한 영혼으로 하느님을 면접할 수 있는 큰 은총입니다. 아무래도 평상시에 고해성사를 잘 준비해서 자주 보시던 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 자신도 자주 이런 화살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제게도 임종 시 고해성사를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 하소서. 아멘…”
- 박상용 신부(원주교구 천곡동본당 주임)
■고해성사로 회두한 어느 평신도의 체험
“암흑 벗어나 푸른 창공을 나는 심정”
부정한 생활방식 길들여지고 혼인 서약도 배신
죄 고백 후 아내 소중함 깨닫고 봉사의 삶 살아
부족함이 많은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은 없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주님을 멀리하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20여 년간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어둠속에서 방황하던 내 삶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난 1970년 서른 살 때 서울시청 행정직 공무원에 채용되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난무하던 당시, 나 역시 특별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부정한 생활방식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삶은 그렇게 차츰 변질되어 가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 어둠의 삶 때문에 자연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십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을 범하는 또다른 대죄를 저지르게 됐다. 당시에는 조당이라고 자각하기 보다는 인간의 로맨틱한 사랑이라고 착각까지 하며 어둠의 늪으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채 오랜 세월이 흘러갔고, 그런 삶이 지속되는 과정에선 공직생활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당시 나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1987년 여름, 가족들을 그곳에 둔 채 취급해 본 적이 없는 업종인 자동차 부품 가게를 해 보겠다며 생소한 곳 원당으로 혼자서 왔다.
8평짜리 가게를 월세로 얻었다. 이때부터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극심한 고생이 시작 됐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나는 지금도 운전면허가 없다. 그런 내가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특히 시장조사 또는 실현가능성 유?무도 분석치 않고 남의 말만 믿고 계획없이 덥석 시작한 부속 가게가 잘 될 리 없었다.
어리석음과 무지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때는 늦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손님이 한분도 찾아오지 않을 때 심정은 정말 피가 말랐다.
넉넉하지 못한 상태에 부품 가게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미련하고 어리석었던 나 자신에 땅을 치는 극심한 후회를 하였다.
도저히 부품 가게를 더 지속(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동안 투자하였던 본전의 반이라도 회수해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가족 생계를 꾸려가야 할 가장으로서 하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나약하고 못난 자신을 비관하면서 점점 절망에 빠졌다.
인생낙오에 대한 외로움과 삶에 대한 회의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을 때 한 종교단체의 신자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 때는 영적으로 고독한 상태여서 그들이라도 자주 찾아와 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짧은 성경 깨달음 탓인지 교리도 서로 크게 다른 것이 없는 듯 느껴졌다. 또한 대죄(조당)를 범한 장애 때문에 성당에 갈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들이 와주는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94년 초에 용기를 내어 다시 성당을 찾게 됐다. 물론 성체를 영할 수는 없었다. 성당 뒤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미사가 끝날 때면 남모르게 슬며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일 미사가 끝날 무렵 파견성가로 가톨릭성가 206번 ‘성심의 사랑’ 을 함께 따라 부를때였다. 코 잔등이 시큰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누가 볼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던 그때의 내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해 여름 아내는 내가 혼인서약을 배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는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성실한 남편으로 믿어왔다. 가족을 위해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측은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배신감이 컸을까.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에 아내는 절망하고 좌절했다. 순진하기만 했던 아내의 울부짖는 절규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했다. 나는 그동안 잘못한 죄책감과 극심한 회한으로 세상 모든 것이 다 멈춰 버리는 것 같은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그해 늦은 가을 나는 명동성당으로 가서 모르는 신부님께 그동안의 대죄를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 모두 고백했다. 고해소를 나오는 그때의 나의 그 기쁜 심정은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동안 느꼈던 삶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는 암흑의 긴 동굴 속에서 빠져나와 밝고 맑은 푸른 세상에서 창공을 훨훨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와 같은 심정이었다. 오랜 방황을 주님께서는 너무도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조당을 풀고 주님 자녀로 거듭 날 수 있게 도와준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정말 감사하기만 하다.
오랜 세월동안 죄악으로 범벅이 되었던 이 죄인의 지금 모습은 아직도 서툴기는 하지만 주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내의 소중함도 깊이 깨달아 그동안 못 다한 부부사랑을 위해 여생을 바치려고 결심하고 있다.
주님은 나약하고 무지하며 어리석으면서도 사악하고 교만하고 시기와 질투 증오와 저주, 그리고 음욕과 탐욕, 인색함으로 인해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이 몹쓸 죄인을 내치지 않으셨다. 당신의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형제자매 관계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 하셨다. 우리 이웃 가운데 고통 중에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는지 돌아보고 주님과 헤어져 살고 있는 교우에게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지금 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지금은 너무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교회에서 작지만 평신도 사도직에도 봉사하고 있다. 이웃과 어려움을 나누는 즐거움도 맛보고 있다.
이제 남은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려 한다. 나의 삶을 주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주님의 자녀로 봉헌하련다. 아멘.
- 조차영(토마스·의정부교구 원당본당)
사진설명
고해성사를 한 신자에게 사제가 사죄경을 하고 있다.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일상과 가정,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 지 깊이 새기는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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