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삶의 궁극적 의미 깨닫게 해
정신의 본래적 의미 모른채 자기 중심 삶 집착
거룩한 몸 생성·하느님과 영적 연결로 이끌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녀들을 초등학생부터, 아니 유치원 나이부터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등 떠민다. 그런데 부모들은 왜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할까.
“왜 엄청난 돈을 들여서 자녀들에게 공부를 시키느냐”고 물으면 부모들은 열이면 열 모두 “다 자식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학교도 못가고, 밥벌이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소위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공부를 하는 정확한 목적이 아니다. 소위 일류대학이라는 곳을 나와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 완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공부는 오히려 이 사회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학생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꽤 잘 하던 학생이었는데 부모의 ‘대단한 성화’와 후원에 힘입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부모와 학생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았는데 위암으로 밝혀졌다. 심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공부가 원인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한 중년 남성이 미국에 왔다. 간 이식 수술을 위해서 였다. 그 수술비가 당시 환율로 따지면 약 10억 원 정도였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모아봐야 4억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수술을 받지 못할 상황이었다. 우연히 그 남성을 알게 된 나는 그가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곧 예비신자 교리를 시작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또 인생이 어떻게 시작되고 종말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이제 인생이라는 것이 언젠가 한번은 가야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놓자 변화가 일어났다. 아내는 “그동안 벌어놓았던 재산이 모두 다 없어져도 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하느님께서 거둬가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돈이 있어도 없어도 하느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함께 예비신자 교리를 받은 친척들도 가진 재산을 모두 나눠 보태겠다고 했다. 결국 이 남성은 수술을 받고, 완치될 수 있었다.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자, 이 사람은 몸만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삶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 의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정신은 일시적 의미밖에 모른다. 정신은 그만큼 얕은 수준이다. 하느님의 궁극적 뜻 앞에서 정신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는 정신에만 의지해 살아간다. 이렇게 사용하는 정신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최상의 역할을 하는 정신이 아니다.
오늘날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래서 끼가 있는 아이들은 너도나도 연예계를 기웃거린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청소년들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서 스타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정신의 역할은 신체를 생생하게 만들어 나아가도록 기능하는 것이다. 또 영과 연결되어 인간이 무한히 초월하도록, 궁극적 의미와 궁극적 목적을 깨닫도록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신의 현주소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 진다. 인터넷을 보자. 인터넷 안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고, 철저히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과연 있는가. 온갖 자기 자랑과 기만과 교만이 넘친다. 인터넷에 좋은 정보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정보들은 현재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정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쪽으로, 즉 반쪽은 형성적 나머지 반쪽는 반형성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정신의 가장 우선적 역할은 육신을 살아있는 생생한 육신으로, 거룩한 육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궁극적 의미와 계속해 연결해 나가는 것이 정신의 역할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정신으로 몸도 거룩하게 못 만들고, 영과의 관계도 못 맺는 반형성적인 삶, 오직 경쟁주의 사회 안에서 자기의 이권과 자기 중심적인 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정신적인 기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신을 물질적인, 세상 살아가는 전문적 기능만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마치 육신이 암으로 죽어가듯, 정신은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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