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자아이면 죽이실 건가요?
남아선호 뿌리깊은 사회
태아성감별 허용 되면
‘남아 골라 낳기’ 부채질
인간 최고 가치 ‘생명’
반드시 지켜져야
성감별 찬성
“부모 알권리·행복추구권 침해”
성감별 반대
“아들 낳기 위해 여아 낙태하는 현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태아 성(性 )감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최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은 낙태 등 생명훼손에 대한 뚜렷한 대안없이 법개정을 선언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이번 헌재의 판결에 대해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의학계는 적극 찬성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게다가 일반시민들은 성감별과 그에 따른 낙태 등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지난 2004년, 한 변호사가 임신 9개월에 접어든 부인을 진찰한 의사에게 태아 성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가 의료법을 근거로 거절당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또 이듬해 산모에게 태아 성별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면허정지 6개월의 처분을 당한 의사 또한 헌소를 냈다.
헌재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낙태가 사실상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성감별 고지를 막는 것은 의사의 직업 수행 자유와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의료법의 위헌을 선언했다.
논란이 되는 현행 의료법 제20조 2항(구 의료법 제19조 2항)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은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남녀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해 지난 1987년 제정됐다. 특히 이 조항은 낙태 행위와 더불어 남녀차별의식, 생명경시풍조에 경각심을 주는 최소한의 방패 역할을 해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어, 앞으로 생명수호활동에 더욱 고삐를 당겨야할 것으로 보인다.
“아기 성별 아는 것이 큰 문제인가요?”
단순한 대답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이다.
하지만 질문의 이면에 ‘낳고 싶은 성별을 선별한다’는 의도가 감춰져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생명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가치다. 어린 생명일지라도, 그 어떤 경우에도 부모의 알권리나 행복추구권이 더 소중하진 않다. 성별에 따라 아이의 옷을 사는 등의 출산 준비 등은 태아 성별을 꼭 알아야할 이유로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우리 사회에서는 초음파 진단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태아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무분별하게 자행된 바 있다.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에 더해 인구억제정책이 펼쳐지면서, 적은 수의 자녀를 출산하더라도 아들을 낳고자 하는 바람과 맞물려 벌어진 사태들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태아 성별 금지’ 조항을 제정, 구체적으로 여아의 낙태를 근절하기 위한 울타리를 만들었다. 이 조항은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임신부나 가족, 타인에게 알려준 사실이 드러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감별 찬성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측은 “낙태의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드는 임신 말기에도 무조건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행복추구권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21년 전 성감별 금지법 제정 때와는 달리, 요즘은 남아선호사상이 퇴색하고 남녀 성비가 자연성비에 근접한 상황으로 이 조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또 청구인측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34만건의 낙태 가운데 90% 이상은 사회?경제적 이유 혹은 터울 조절 때문에 이뤄지며, 성감별 고지 금지 조항은 낙태 예방에 아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의사들은 성감별을 금지한다고 해서 낙태가 억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의사들의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역설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고재환 법제위원회 간사는 “태아 성감별과 관련해 각종 처벌을 규정해놓고 있지만 실제 시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이는 법조항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태아 성감별로 인한 처벌은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인데, 청탁으로 낙태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규정, 태아 성감별 행위로 인한 처벌이 낙태 자체의 행위보다 더 심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위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감별 반대
시대변화와 함께 우리사회에서도 여성권리가 상승하고 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남아선호 또한 예전에 비해서는 완화된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남아선호사상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며, 여성에 대한 차별 또한 개선속도가 느린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성비불균형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인 남아선호 관념은 하루아침에 근절되기 어려운 전통적인 의식구조로 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8월 5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녀 출생성비는 106.1명으로 25년 만에 자연성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자아기 100명당 남자아기수를 헤아리는 출생성비는 남자아기 수가 통상 103~107명이면 정상수준으로 본다.
그러나 이 비율은 첫째, 둘째 아이에 대해 적용되는 수치이며 셋째, 넷째의 성비는 지역에 따라 121~132명으로 크게 늘어나 여전히 불균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통계청 국제통계연감에 따르면 한국은 여아 100명당 남아 출생비율이 세계 우위에 서있다. 저출산 시대에 아들 골라 낳기가 더욱 우려되는 것도 현실이다.
헌재는 또한 모자보건법과 형법이 낙태죄를 묻고 있어, 임신 말기에는 태아 성별을 고지한다 하더라도 낙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1심 법원에서 처리한 낙태죄 관련 판결은 2004년 5건, 2005년 0건, 2006년 11건, 2007년 9건에 불과할 정도로 낙태는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다. 실제 우리사회에서는 임신 9개월에도 여아라는 이유로 유도분만을 통해 낙태하는 사례까지 보고된다.
이에 따라 태아 성별을 이유로 낙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시술 의사 뿐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까지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감별 허용 반대자들은 “면밀한 사회 변화 및 의식조사와 낙태를 금지하는 명확한 처벌조항 등의 대안 없이, 태아성감별을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성감별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의료인 뿐 아니라 임신부까지도 낙태 목적 성감별 규제 대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법제 마련이 더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법조인들도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 영향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법 개정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낙태 예비행위로서 성감별이 이뤄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형법적 처벌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재 발표 후 즉각 ‘태아 성감별 허용을 우려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성감별 폐해를 대사회적으로 설명한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 총무 송열섭 신부는 “보건복지가족부 자료에 의하면 연간 35만건의 낙태 중 성감별로 인한 낙태로 밝혀진 건수만도 2500여 건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특히 송신부는 “여전히 ‘아들을 낳기 위해’ 셋째 여아가 낙태되는 현실에서 태아성감별 고지 금지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법으로 치부되고 헌법불일치로 판결된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며 “부모의 알권리와 의사의 자유권에 비하면 태아 자신이 누려야할 생명권은 더욱 근원적인 권리이며, 헌법이 마땅히 수호해야 할 인간존엄성의 기초가 되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헌재의 판결을 근간으로 할 때 최소한 임신 전 기간에 걸쳐 태아 성감별이 완전 허용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헌재는 법적 공백을 감안해 태아 성별 금지 조항을 내년말까지 개정하도록 하고, 그때까지는 현행법의 효력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임신 후반기(28주 이상)에는 태아성감별 고지를 가능하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13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