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어느 대축일 미사 때 어머니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다가 제대 조명에 의해 흰백 색으로 빛나는 제의를 입으신 신부님을 저는 보았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성당 가기 싫은 마음에 형과 냇가에서 미사 시간 끝날 때까지 맞추어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한두 주일 거짓말을 하면서 헌금으로 주신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그 돈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옷에 두었다가 빨래하시던 어머니께 발각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 때 두 손에 헌금을 들고 근심과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로 우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형을 따라서 복사를 서면서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을 통해 저는 성소란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꿈을 꾸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신학교 입학시험 후 시험보다 더 떨렸던 면접을 볼때 어느 교수 신부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자네는 왜 사제가 되려고 하는가?”
선배들로부터 전해 들어서 대답을 미리 준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열아홉 살답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 사제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시작이야 어찌되었든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제서품을 함께 준비한 31명의 동기들과 부제서품을 준비하는 22명의 후배들. 모두 53명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 피정을 통해 기도하는 이 시간 저는 또 새롭게 바라보고 머물러 봅니다.
특히 이번 피정은 이용훈 마티아 주교님의 지도로 한번 자리에 엉덩이가 닿으면 3시간동안 꼼짝하지 않는 기회가 매일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훌쩍 떠나버리는 기도를 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저에게 해 주셨던 것처럼 그냥 마냥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3시간 묵상이 끝날 무렵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깨달음의 선물을 소중히 마음속에 담고 사제로 살다가 그분 품 안에서 사제로서 눈 감을 수 있도록 두 손을 모아 간절히 청해봅니다. 제가 왜 사제가 되려고 하는지 묵상 노트에 기록했던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숨이십니다.”
숨. 보이지 않아 잡을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원천입니다. 따로 뗄래야 뗄 수 없고, 버리고 피하고 도망갈 수 없는 당신은 저에게 숨이십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머리끝에서 가슴 끝까지, 몸 안에서 몸 밖 온 세상 어디에서든지 당신은 언제나 늘 함께 계십니다. 제가 의식하고 있든지 의식하고 있지 않든지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많이 들이 쉰다고 해서 더 오래 살고, 입과 코를 꼭꼭 막는다고 제 의지로 생을 마감할 수 없는 저에게 예수님은 숨이십니다.
그 숨소리가 들려주시는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는 말씀을 믿고 굳건한 마음으로 예수님 닮은 사제로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렵니다.
이제는 저 혼자만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서른 한 명의 동기 새 신부님들과 세상 모든 분들과 함께 새로운 숨을 쉽니다.
이보다 더 큰 행복과 은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노중호(프란치스코, 8월 22일 사제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