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의탁하면 늘 힘을 주십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근무하며 ‘직지심경’ 발견
50년 이상 한국의 잊혀진 역사자료 발굴·연구
힘들 땐 ‘성모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마음 다져
재불 역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누갈다·80) 이름 앞에는 늘상 ‘직지심경의 대모(代母)’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한 공로 덕분이다.
프랑스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하고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1967년, 그는 직지심경을 발견하는 역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어 그는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직지심경을 출품했다. 직지심경이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 앞서 인쇄된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자리였다.
조선왕조 내 각종 의식 관련 내용을 기록한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권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회가 있던 청사도 모두 박박사의 열정으로 발견됐다. 최근엔 1985년 발간했던 ‘조선조(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판 집필에 여념이 없다.
이번 가톨릭인터뷰에서는 증보판 탈고를 위해 잠시 방한했던 박박사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뤄졌다. 한번 집필에 들어가면 두문불출하며 전화조차 거의 연결하지 않는 그의 집중력 덕에, 첫 통화 후 한달여만에 가진 만남이었다.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질문은 피해주시겠어요? 언론들마다 그것만 물어봐서 이제 듣는 사람도 지겨울듯 한데요.”
인터뷰를 최대한 간략하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예상보다 자료 확인 작업이 까다로워 증보판 집필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며, 자신은 지금 온통 글 쓸 생각 뿐이라고 덧붙인다. 온통 밀린 숙제에 빠진 입시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80세 나이가 무색하게 온종일 자료 조사와 집필에 매달리는 열정과 정력에 감탄사가 절로 났다.
박박사는 자신의 일상은 매우 단순하다고 소개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를 바치고 나면 직접 밥을 해먹고, 온종일 자료를 정리하고 글쓰는 것이 거의 전부란다.
박박사는 50여년 이상 한국의 잊혀진 역사자료를 발굴·연구하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온 인물이다. 그동안 ‘한국의 인쇄사’를 한국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영어로 출간했고, ‘한국의 무속사’와 ‘한국의 역사’도 프랑스어로 출간한 바 있다.
특히 마무리 작업 중인 ‘조선조의 의궤’ 증보판은 분량 중 1/3 가량을 프랑스어로 집필했고, 조만간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요청과 관련해 프랑스 국영 TV와 인터뷰할 때였어요. 방송사 간부 말이 프랑스 사람들은 병인양요가 무엇인지, 외규장각 도서를 왜 반환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박박사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병인양요 등의 역사를 알리고 우리 문화재 반환을 설득할 자료 집필에 다시 나서게 됐다. 증보판에는 의궤 내용은 물론 의궤가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을 당시 프랑스 해군의 일기와 공문서, 압수목록표 등을 첨부해 자세히 설명했다.
“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야 하는 지 묻는 프랑스인들에게 제가 반문했지요. 만약 루이 14세 당시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요.”
사실 수십년에 걸친 역사연구는 박박사만의 외로운 작업이었다. 재불 역사학자의 활동에 한국에서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같은 길을 걷는 한국 역사학자들조차 냉대했다. 직지심경에 대해 한국에 알린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도 떠나야 했다. 프랑스쪽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신이라며 거세게 질책했기 때문이다.
“역사자료를 하나둘 자료를 모으다보니 작은 집이 가득 차더군요. 어렵사리 모은 자료들을 버릴 수도 없어서 계속 연구한 것이지요.”
그간의 활동에 대해 겸손하다 못해 무심한 듯 말했지만, 역사와 연구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 박박사의 눈은 그야말로 빛이 났다. 새로운 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네 자신을 알라’는 한마디가 역사공부의 시작이 됐지요. 나 자신을 알아야 남도 알고 또 그래야 발전할 수 있기에 역사공부가 필요합니다.”
홀로 자료수집과 연구를 이어가며 마주한 힘든 순간들에는 항상 “이러한 때 성모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반문했다.
“항상 성모님께 여쭤보면 참고 이어나갈 힘을 주신다”는 박박사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사랑은 자신의 인생이자 희망”이라고 말한다. 여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친구였던 수녀님께 심부름차 성당을 종종 드나들었던 박박사는 그때 접한 성인성녀전 덕분에 신앙인이 되었다.
“이젠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애덕 실천보다 ‘주님’ 이름을 팔아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돈 많이 내는 신자들을 보고 열심한 신자들이라고 하는 말을 전해듣고는 사실 한국교회에 정이 떨어지더라고요.”
박박사는 매일 아침을 ‘오늘 하루를 주심에 감사드린다’는 기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하루는 잊혀진 역사를 되살리는데 온전히 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박박사의 설명은 끝이 없다.
이젠 좀 쉬어도 될 나이가 아니냐는 말에 박박사는 단호하게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 같다”고 말한다. 그는 조선조의 의궤 증보판 집필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3.1운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독립운동사 집필에 들어갈 예정이다. 2000상자가 넘는 독립사 자료들은 수년째 정리하는 중이었다.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등을 일일이 발품 팔아가며 샅샅이 뒤진 끝에 찾은 자료들이다.
“세계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나의 ‘뿌리’를 올바로 알아야 미래를 더욱 밝게 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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