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들숨날숨은 열정으로 가득한가
“너는 살아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중 네 번째로 방문한 곳, 사르디스(Sardis). 묵시록의 저자에게 가장 큰 책망을 받은 교회이기도 하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 살아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
사르디스가 들은 책망을 여러 번 되새겨본다. 살아있지만 어떻게 죽어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죽은 삶’이라는 말이 가능할까.
사르디스 폐허에 덩그러니 남은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들은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웅장했다. 몇 사람이 에워싸야 될 만큼 굵은 기둥들이며, 튼튼한 바닥은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역사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역사가들의 말을 잠깐 빌리자면, 사르디스는 기원전 5~6세기 아주 부강했고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다고 한다. 초대교회 시절, 사르디스 지역에서 금이 많이 생산됐기 때문에 시민들은 부유했고, 박해 또한 받지 않았으며 물질만능주의에 푹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라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사르디스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실로 크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숨은 쉬지만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숨쉬기는 하나 죽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형제는 엄청난 부를 가졌다. 아쉬운 것 없이 고급 단란주점을 드나들며 세상의 많은 쾌락을 즐겼다. 그러나 그는 자주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행복하지 않고 외롭다’고 한다.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에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돼 버렸다.
숨을 쉬는 모든 것을 살아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별다른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고, 사도직을 열심히 수행하고, 자리에 몸을 뉘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또 다른 하루를 감사하는 것이다.
우울증에 빠져 방안 이불 속에서 허우적대다 창문을 통한 한줄기 빛에 희망을 찾고 일어나는 것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내게 허락하신 하루를 감사히 살자.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사르디스는 되지 말자.
한 가지 삶의 의미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어느 철학자가 대성당 공사를 위해 큰 돌을 다듬는 세 석공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석공은 “나는 그저 돌을 깨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고, 둘째는 “나는 가족들을 위해 돌을 부수고 있어요”라고 했다.
셋째는 “나는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고 있지만 이 자리에 대성전이 세워진다는 사실에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첫째는 삶을 아무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이며, 둘째는 가족의 생계만이 마치 생의 전부인 양 사는 사람이다. 셋째는 자신의 존재 이유 위에 좀 더 높은 차원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셋째 석공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 죽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르디스 교회 순례 후 오랜만에 먹은 눈물겨운 한식도, 신전 기둥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도, 터키 특산물인 향긋한 체리도, 손 흔들어주는 예쁜 아이들도 모두가 하느님이 오늘 내게 마련해주신 ‘소중한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 6)
-살아있지만 ‘죽은 삶’에 대해 묵상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사르디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웅장하게 재건됐으나 미완성…
트몰루스(Tmolus 해발 2137m) 산 아래 자리잡은 아르테미스 신전이 장관이다.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더 컸다고 하지만 사라져버리고 초석은 늪 속에 묻혀 있는데 비해 사르디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터키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신전이다.
사르디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600년경에 처음 세워졌으나 기원전 499년 이오니아혁명 당시 파괴됐다. 그 후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전면 폭 50m, 길이 90m, 돌기둥 78개의 웅장한 규모로 재건됐으나 끝내 마치지 못한 미완성 신전이 됐다. 이후 비잔틴 시대에 개조해 교회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사르디스의 수호신은 시벨리(Cybele)로 사람들은 시벨리신에게는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사도 요한은 이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몇 사람을 칭찬했다고 한다.
gotcha@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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