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복음 묵상-김대영 신부(요당리성지 전담)
9월 7일 연중 제23주일(마태 18, 15∼20)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어라
모 본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지만 불자인 지역의 유지가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물품과 헌금을 성당에 가끔씩 봉헌하셨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그분의 뜻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이분이 이번에도 찾아오셔서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헌금을 봉헌하셨다. 여느 때와 같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봉헌금을 확인해보니 봉헌액수가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액수가 너무 커서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럽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분 하시는 말씀이 “이 돈은 반드시 성당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하도 강하게 말씀하셔서 제가 웃으면서 “왜 그래야 됩니까?”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얼마 전에 사소한 일로 천주교 신자와 재판을 했고, 그 재판에서 승소해서 합의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합의금을 받고보니 자신이 사용하기에는 조금은 찝찝한 생각이 들어 ‘천주교 신자와 관련된 돈이니 차라리 성당에서 사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그분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히려 ‘받을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께 “저는 그 돈을 받을 수 없으니 차라리 그분과 화해를 하라”고 권고해 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절대 그럴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분을 설득했다.
실랑이가 한참 오가다가 하느님의 도우심이었는지 갑자기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그것은 “상대방 주소를 알려주시면 돈과 함께 화해하겠다는 형제님의 뜻을 편지로 제가 전달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금 전과는 달리 그분이 완고한 마음을 풀고 저의 이런 뜻을 받아들이셨고, 저는 그날 당장 편지를 작성해서 돈과 함께 얼굴도 모르는 그 천주교 신자에게 부쳐드렸다.
그런데 걱정이 앞섰다. 왜냐하면 ‘아무리 천주교 신자라 할지라도 한번도 대면한 적 없는 신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런 저의 우려는 기쁨과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다. 바로 제가 편지를 보냈던 그 천주교 신자로부터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저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보란듯이 불자인 그 지역 유지에게 연락을 했고, 그 유지는 상대방 천주교 신자가 보내온 참회와 용서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도 용서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과 이러한 잘못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는 우리 역할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로지 나 자신의 구원과 안위를 위해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많은 이들이 우리들을 통해 다시금 하느님을 만나길 원하고 있다. 주님 안에서 용기를 내어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나서는 용기 있는 우리들이 되자.
5분 신앙상식-예언서 개관
‘하느님의 대변자’가 “하느님 섬기라” 외쳐
예언서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 삶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 졌다.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한다고 깨우쳐주려는 목적에서 저술하게 된 것이 예언서이다.
예언서는 총 18권으로 대 예언서와 소 예언서로 나눈다.
대 예언서와 소 예언서로 나누는 것은 책의 분량에 따른 구분이지 결코 내용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들은 ‘미래를 말하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아 그 분을 대신하여 말하는 ‘하느님의 대변자’들이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에 기초를 둔 진실한 마음의 종교를 주장하고 예배의 형식주의 보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길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섬기라고 외치며, 주인이신 야훼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고 순명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예언자들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소홀히 다루고 함부로 대하다가는 하느님께로부터 천벌을 받는다고 하면서 자비와 정의를 부르짖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윤리적 본성을 중시하고 도덕적 바탕 위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질책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야훼 하느님과 멀어지는데서 오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예언의 활동이 자신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후부터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그 길을 가야했으며 하느님께서 입에 담아 주신 말씀은 선포해야만 했다. 그 내용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박해가 닥친다 해도 외쳐야 했으며 원하지 않는 내용이라도 말해야 했다.
예언자들의 생애는 대개 고달픈 시련의 연속이었고 자기 백성에게 조차 외면을 당했지만 이들은 헌신적인 섬김의 삶을 통하여 자신들이 받은 직무를 수행했다.
예언자들이 활동한 시기는 바빌론 유배를 중심으로 전후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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