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닦아요, 기쁨이 올 수 있도록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공존하는 병원은 늘 분주하다. 환자와 보호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마와 싸우며 병원을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또 그 안에는 청결과 아름다움을 위해 스스로 ‘더러움’을 선택한 미화원들이 있다.
이번 ‘취재 현장 속으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미화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喜
기쁘다.
새벽 5시,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시간에 경기도 부천시 성가병원(원장 김형민) 미화원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제법 쌀쌀해진 새벽 공기를 맞으며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지만 미화원들은 기쁘다. 집을 나서 직장으로 향하는 기쁨은 어지간한 사람들이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아침 조회가 미화원들의 첫 일과다. 오늘 해야 할 일, 신경 써야 할 일들을 알려준다. 조회 후 각자 맡은 병동으로 돌아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해야 할 때다.
미화반장 이교순(마리아·72·인천 삼정동본당)씨는 지하1층부터 10층까지 병원 전체를 관할한다. 금요일은 2인 병실 화장실의 휴지를 채우는 날이다.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은 병원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덕분에 이씨도 운동량이 많아졌다.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는 9, 10층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70대신데 2개 층을 계단으로 이동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자기만한 휴지더미를 들고 위층으로 향하는 것으로 답한다. 작은 체구로 재빨리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제 또래 사람들에 비해 건강한 편이죠. 매일 하느님께 기도하거든. 계속 일 할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怒
아팠다.
마음이 아파서 하느님께 화를 내기도 했다.
14년 전 급작스럽게 곁을 떠난 아들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죽기 전까지 병원 시설과에서 근무했었다. 26년간 성가병원에서 일한 이씨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 이곳저곳에 아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병원 4층 성당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이냐”며 하느님께 울부짖었다. 한동안은 퇴근하자마자 아들이 묻힌 곳으로 매일 같이 달려가 밤새 울고 온 일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아직도 아들이 가슴 속에 사무쳐 슬픔으로 남아있지만 아들이 떠오를 때마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기자와 이야기 하던 이씨는 갑자기 아들이 떠올랐는지 말없이 층층을 찾아다니며 휴지를 채워 넣는다.
哀
슬프다.
얼마 전 같이 근무하던 경비 아저씨가 암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밝게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아프다고 하니 아들이 생각나 이씨의 마음이 아프다. 환자복을 입고 로비에 홀로 앉아 있는 경비 아저씨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다가가 정겹게 안부를 묻는다.
“울면서 나왔으니 웃으면서 가야 한다”는 말로 위로를 한다. 그리고는 바로 종종걸음으로 로비를 돌아다니며 청소를 한다.
베테랑 미화원답게 로비 바닥에 고인 물을 발견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에 그는 바로 걸레질을 한다. 반장이기에 동료들을 시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직접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만의 관리방식이다.
최근 리모델링 공사로 미화원들의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하고도 여전히 할 일이 쌓여 있다.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먼지도 시도 때도 없이 날려서 청소를 해도 티가 안 난다.
속상할 일도 생긴다. 걸레질 하고 돌아서면 더러워져있고 청소하고 나면 또 누군가 쓰레기를 버린다. 칭찬을 듣는 일보다는 불만불평을 듣는 일이 많다.
힘든 때도 많다. 바닥 왁스칠을 하는 날에는 오후 10시에 일이 끝나기도 한다. 왁스를 칠하고 닦고 말리고를 몇 번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고희가 넘은 이씨의 온 몸은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그때마다 그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 한다.
“하느님 너무 힘듭니다. 저와 함께 해주세요.”
그러면 기적같이 힘들었던 감정이 사라진다.
樂
즐겁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는 일이 별로 없다. 간호사들을 봐도 연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 환자들을 보면서도 미소로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그의 눈은 쓰레기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비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상 주변을 살핀다. 그는 요령을 부리는 법이 없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2년 간 전국 600여 개 병원 중 청결도 1~2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러운 건 내 눈에 보이고 깨끗한 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비가 내린 22일 오후에는 창문을 청소했다. 단순히 걸레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떼다가 물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동료들과 즐겁게 일한다.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도 나누기도 한다.
“병실을 돌아다녀보세요. 다들 누워서 꼼짝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깐 즐거울 수밖에요.”
병원을 나서는 길에 뒤를 돌아봤다. 아침에 봤던 병원과 오후에 보는 병원의 모습이 달랐다. 치열한 삶의 현장 병원이 미화원들의 묵묵한 희생으로 조금 더 환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진설명
▲성가병원 미화반장 이교순씨는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미화원으로 열심히 일한다.
그는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씨가 지하1층부터 10층까지 다니며 병실 화장실의 휴지를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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