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서 피는 소금꽃
신자들 입가엔 웃음꽃
간수를 빼낸 소금 자루가 평상으로 옮겨졌다. 새하얀 소금이 눈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어르신 대여섯이 재빨리 평상으로 모여들었다. 흩어질까 조심스레 한 바가지씩 퍼서 바로 포대에 담았다. 바닷바람을 타고 짭쪼름한 소금 냄새가 콧속에서 진동했다. 햇볕과 바람과 사람이 20일 동안 손을 보태 일궈낸 인고의 새하얀 결정체. 천일염 냄새였다. 소금꽃을 건져 입안에 넣어보니 짠맛과 함께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8월 23일 오전 전남 신안군 압해면 광주대교구 압해도본당(주임 정대영 신부) 신장공소의 소금 창고. 이른 아침부터 소금을 생산해 포대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 여름은 날씨가 허벌나게 더워부러서 꽃이 더 예쁘게 피었지라””아, 레아씨. 떠들지 말고 싸게싸게 담아요~”
하얗게 피어난 소금꽃을 바라보는 정대영 신부와 공소 신자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압해도본당 신장공소 공동체가 천일염 ‘빛의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8월부터. 좋은 소금을 전국의 교우들과 나누고, 성당 신축기금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신자 수 100명 남짓에, 평균 연령 70세를 넘긴 노인들이 대부분인 공소 공동체. 가난한 어르신들에게 봉사활동은 멀리 있었고, 생계는 현실이었다. 결국 정신부가 직접 나서야 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염전으로 나가 소금을 날랐고, 직접 간수작업과 탈수작업에 매달렸다. 소금 포대를 양쪽 어깨에 메고 뛰었다.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지게차 운전도 배웠다. 천일염 생산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람 손을 타야 한다. 생산에서부터 배달까지 단순 노동력의 연장이다. 오죽하면 인부 ‘땀 한 됫박에 소금 한 됫박’이라고 했을까. ‘빛의 소금’은 그렇게 탄생했다.
정신부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이면 쉬지 않고 전국 각지의 본당을 돌며 소금을 팔러 다닌다. 이러다보니 사연도 많다. 수천포의 소금을 싣고 가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춰서 진땀을 빼기도 일쑤. 광주 시내 어느 성당을 찾아갔는데 본당 신자들이 소금 트럭을 보더니 대뜸 “사장님, 트럭을 성당 앞에 주차하시면 어떡해요. 빨리 차 빼주세요”라고 했다더라.
신장공소에서 한해 동안 생산하는 천일염은 10kg 2만포 분량. 처음에는 목포와 광주 일대에서만 유명했지만,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도 다시 찾는 소비자들이 서서히 늘고 있다.
소금은 전부 강남수(요셉·73)·제갈영자(마리아·63) 부부의 분매리염전에서 가져온다. 6600평 규모의 염전을 일군 강씨 부부는 37년 동안 한결같이 소금꽃을 피워 강주현(프란치스코 마리아·카푸친 작은 형제회) 신부를 비롯한 아들 삼형제를 키웠다.
신장공소의 소금창고에서는 생산은 물론 판매도 함께 이뤄진다. 가족과 함께 방문해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도 있다.
정대영 신부는 “소금이야말로 자연을 만드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선물”이라며 “하느님께 받은 선물을 전국의 우리 교우들과 나눌 수 있는 큰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전했다.
신장공소의 소금창고에는 연중 내내 어르신들의 웃음 소리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바다와 태양과 바람이 빚어내는 조화는 오늘도 계속된다.
■ 압해도본당 신장공소 천일염 ‘빛의 소금’
▲ 가격
5kg(5000원), 10kg(1만원), 15kg(1만4000원)의 세 종류가 있다.
▲ 구입방법
압해도본당 인터넷 홈페이지(http://cafe. daum.net/moyses) 또는 전화(061-271-0505) 주문. 전국 어디나 배달 가능하며, 총 합계 30kg까지는 택배비 4000원이 추가된다.
■ 천일염(天日鹽)이란?
바닷물을 염전에 가둬 햇볕과 바람에 자연 증발시켜 만든 소금. 천일염에는 염화나트륨 이외에 칼슘·마그네슘 등이 들어 있는데, 예전에는 이런 미네랄 성분을 불순물로 생각해 천일염을 식품이 아닌 광물로 간주했다.
천일염은 대체로 4월 중순 경부터 10월 중순까지 얻을 수 있다. 이 시기엔 장마나 태풍으로 인한 궂은 날이 많아 천일염을 생산할 수 있는 날은 연중 80여 일에 불과하다.
천일염은 지금까지는 ‘굵은 소금’이라 불리며 주로 절임용으로 쓰였다. 일반 가정에서 대부분 사용하는 정제염(精製鹽)은 바닷물을 전기분해 등 인공적으로 처리해 만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소금은 프랑스 게랑드 지역에서 난다. ‘꽃소금’(fleur de sel)이라 불리는 이 소금은 1㎏에 무려 4만원을 호가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쓰이는 게랑드 소금은 염도가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소금은 염도가 90% 이상인 반면, 게랑드 소금은 염도가 83% 내외다. 염도가 낮은 만큼 칼슘, 철분 등 미네랄 함량은 높아져 덜 짜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한국에서는 신안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87%를 책임지는 이곳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바람까지 많이 불어 소금 생산의 최적지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압해도에서 나오는 소금은 한국을 대표할 정도로 그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올가을 김장김치에 풍미를 더하고 싶다면 ‘빛의 소금’을 한번쯤 고려해봄직하다.
그리고 또 하나. 목포와 신안군 압해도를 잇는 연륙교 압해대교(1.84㎞)가 지난 6월 개통됐다. 신안군청도 이곳으로 들어온단다. 곧 사람들이 몰리고, 복잡한 관광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 늦기 전에 압해도에 가보자.
사진설명
▲간수작업
▲탈수작업
▲포장작업
▲완성. 정대영 신부를 비롯한 공동체 신자들이 탈수작업을 마친 소금을 두 손에 담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전경
기사입력일 : 200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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