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성 성취하면 삶의 목적 깨달아
초월적 차원 결핍되면 ‘인간다움’ 추구 못 해
논리 중심 오류 벗어나 주님 섭리대로 살아야
인간은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존재다. 뒤집어 말한다면 초월적 차원이야 말로 인간의 삶을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구별지어 준다. 이러한 인간의 초월성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 것인가를 드러낸다.
초월적 차원이 없다면 인간이 아닌 것이다. 초월성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신체적 차원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신적 차원에서도 당시 사회 역사 관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며 생활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당시 독일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소수 지지자들에 의존하던 나치당을 이끌고 독일 총통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체적, 역할적, 사회역사적 차원에서만 한정지어 볼 때 히틀러는 이처럼 탁월한 사람이었다. 소위 일가견(一家見)을 이룬 사람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히틀러를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로 인해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고, 수많은 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수많은 가정이 깨졌고, 수많은 영혼들이 상처를 입었다. 유럽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 졌으며, 그 후유증도 컸다. 살아남은 이들도 가치관의 공황과 집단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한 사람의 광기가 전 세계의 사회역사적 차원을 황폐화 시킨 것이다. 생체적, 역할적, 사회역사적 관계를 잘 하고 살다가 반형성적인 오만(pride)의 삶으로 퇴락한 히틀러는 과연 인간적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이 히틀러를 인간적이지 않게 만들었는가. 어떤 결핍이 히틀러를 인간이지 않게 만들었는가?
과거 우리의 많은 딸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일이 있다. 식민지 젊은 여성에게 조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가 과연 인간적인 일인가.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신사참배를 꼭 해야겠다며 선의의 주변국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과연 인간적인 일인가. 우리는 당연히 히틀러의 삶, 일본의 위안부 잔학상에 대해 인간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영적인 그리고 초월적인 차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초월적 차원의 결핍은 히틀러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만행과 같은 큰 사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 자신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부분 신체적 정신적 차원에 한정해서 사회역사적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쉽게 다른 이들을 속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도 하게 된다. 나 자신의 육신만 위하고, 지나치게 논리적 차원만 강조하는 이들은 자기 함정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의 잘못을 모르고 평생 동안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그 무엇이 빠져 있다.
인간의 초월적 잠재력은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남은 여생동안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신과 신체만 가지고는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 진정으로 속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자꾸만 현실적으로, 순간적인 성취만 위해 살아간다. 돈을 투자하면 수 백배를 벌게 해 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돈을 잃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속이는 사람이나, 속는 사람이나 모두 인간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어느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긴다.
속고 속이고, 또 속고 속이고…. 부족한 나 자신의 능력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끌어 내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억압하고, 조종하려 든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선물인 스스로의 초월성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살라고 했는가. 도대체 왜들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가. 속상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초월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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