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평생 사랑하겠습니까?”
유기성(59·미카엘·대덕본당)씨는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부부는 공무원이었고, 두 딸은 건강했기에 누구보다 행복했던 그들. 행복에 익숙해졌던 2002년, 아내 전현순(54·이레네)씨가 갑자기 유아와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말도 못하고 우측 팔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했다. 하룻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 병원을 몇 군데 찾아다닌 끝에 ‘모야모야병’이라는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산소 공급이 부족해져 뇌혈관들이 ‘안개처럼’ 얇아져 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병. 병원을 찾았을 때 전씨의 뇌는 회복 불가능 상태였다.
“병이 ‘낫는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매일매일 파괴되는 뇌혈관이 생명과 직결되는 곳이면 아내는…. 진행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수술 후 생존 확률 50%, 유씨는 수술을 결정했고 아내는 수술을 이겨냈다. 하지만 좌뇌와 우뇌 모두에 혈액 공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좌뇌 수술밖에 하지 못했다. 수술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수술 후 치료를 위해 가야 서울에 있는 큰 병원도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유씨는 자신이 곁에 없으면 울부짖는 아내를 홀로 두고 일 할 수 없었다. 병원비는 커녕 끼니 해결도 어려운 상황, 본당과 지인들이 건네주는 보조금도 모두 아내의 약값으로 들어갔다. 벌써 7년, 아내 곁에만 있는 유씨를 보며 사람들은 ‘미쳤다’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사이 아내의 뇌혈관은 7년을 버텨냈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인 삶.
그 세월 부부의 일상을 채운 것은 ‘신앙’이었다.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전씨지만 매일 2시간씩 성경에 쓰인 글자를 ‘따라 그렸다’. 진지하기만 한 전씨의 표정을 보면 단어의 뜻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성경필사 후 부부가 향하는 곳은 집 근처 성당. 남들이면 10분에 갈 거리를 부축해서 함께 가느라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정신 연령이 4~5세인 전씨지만 성전에 가면 얌전히 앉아 기도에만 전념한다. 아내의 기도가 무엇인지는 유씨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곁에서 유씨는 매일 같은 기도를 한다.
“늘 보살펴야 하는 아이같은 아내라도 좋습니다. 수술을 다 하지 못한 건 제 탓이지요. 제발, 이 시간이라도 조금 더 이어지게…. 아내를 도와세요”
※도움 주실 분 우리은행 702-04-107874 농협 703-01-360450 (주)가톨릭신문사
기사입력일 :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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