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뿌리 기억하고 순교자 발자취 따릅니다”
대전교구 최초 감실 비롯 1500여 점 유물 전시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옛 사제관을 박물관으로
내포지방 신앙 못자리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주임 오남한 신부)에 한국 교회의 태동과 박해사,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박물관이 들어섰다.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4호인 옛 사제관을 개·보수해 문을 연 박물관은 교구 최초의 감실을 비롯해 교회의 역사를 담은 1500여점의 유물과 본당에서 일생 동안 사목한 에밀 드비즈 신부의 유물, 신유·병인박해 당시 이 지역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대전교구 첫 성당이자 누구나 한번쯤 찾아가 기도하고 싶은 아름다운 성당으로 널리 알려진 공세리성당에 문을 연 박물관은 한국교회의 뿌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순교자들의 얼을 본받는 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어느 때보다 더욱 높아 보이는 공세리성당 십자가를 뒤로하고 박물관에 들어서자 성당 역사를 간직한 세례대와 철제 종이 가장 먼저 반긴다. 1896년 홍콩에서 구입해 들여온 것으로 여겨지는 세례대는 100년 가까이 사용돼 왔다. 일제에 빼앗긴 것을 대신해 해방 이후부터 삼종을 울렸던 성당 종은 반세기 풍상을 헤쳐왔음을 보여주듯 빛이 바랬다. 하지만 종 표면에 새겨진 ‘길이요 진리요’는 여전히 선명하다.
입구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박물관의 첫 전시실 ‘탄생의 방’이다. 초대교회 교우촌의 생활모습과 교회 건축의 대표적 양식인 성당 건축 모습이 ‘디오라마’(diorama,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로 재현돼 있다.
‘에밀 드비즈 신부 방’은 35년 동안 공세리본당에서 사목한 드비즈 신부(1871~1933, 성일론, 파리외방전교회)를 기리고자 마련된 곳. 손자 미쉘 드비즈씨가 기증한 드비즈 신부의 묵주와 회중시계, 세례증명서, 성무일도서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프랑스에 있는 드비즈 신부의 묘소를 재현해 프랑스어로 ‘여기 드비즈 신부께서 한국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묻히시다’라고 새기고 그의 서간집과 묘에서 직접 가져온 흙도 전시해 놓았다.
계단을 올라 들어선 ‘박해와 순교’ 방은 하발바라를 비롯한 아산지역 출신 32위 순교자 명단과 밀양박씨 삼형제 순교자의 유해를 모셔놓았다. 천주교 4대 박해를 나무와 가지로 표현한 ‘천주교 4대 박해도’, 순교자 조각상도 눈길을 끈다.
‘영광의 방’은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현대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곳이다. 공세리본당에서 사목하던 오필도 신부와 교구 첫 방인사제인 본당출신 강만수 신부 등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잡혀가 순교한 성직자들의 부조상을 볼 수 있다.
1950년 7월. ‘신자들이 안 가면 난 갈 수 없어요. 목자가 양을 두고 갈 수 없지요’라며 피난을 권유하던 신자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성당을 지키던 오필도 신부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재창조의 방’은 박물관을 관람하며 되새긴 박해와 순교의 모습을 우리 삶 안에서 본받고 아우르자는 의미로 마련된 공간이다. 관람자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설치미술 작품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개관과 더불어 반세기만에 재현된 본당 성체거동 행사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다. 앞으로 교회 순교사와 관련된 기획전시가 마련될 예정이다.
1, 2층 박물관 전시실을 모두 본 후 다시 한 번 가야 할 곳이 있다. 1층과 2층 사이 계단 옆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다.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본당 주보 베네딕토 성인과 역대 사목자들, 본당 성체거동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 벽화는 박물관에 전시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 성당 순교자현양탑을 만든 한국화가 상성규(안드레아)씨가 벽화를 부조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물과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묵상거리를 주는 유리화는 교구 갈매못성지 ‘승리의 성모성당’ 유리화를 만든 허명자(데레사)씨 작품이다.
박물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 월요일 휴무.
※ 문의 041-533-8181 공세리 성지·성당 박물관
■ 일일문화피정·성체거동
‘박물관을 통해 교회의 역사를 기억하고, 성체거동을 통해 성체신심을 행하자.’
대전교구는 9월 6일 오전 10시 공세리성지·성당에서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제6차 일일문화피정과 공세리성지성당 박물관 축복식, 성체거동 행사를 가졌다.
‘교회 일치의 날’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교구 사제단, 아산지구 신자를 비롯해 교구 신자 3천여 명이 참석해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따르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유흥식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순교자 성월을 맞아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은 자신을 비워 하느님을 가득 채우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인 분들”이라며 “우리 모두 성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순교자들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미사 중에 기도하고 다짐하자”고 당부했다.
미사 후 유흥식 주교와 사제단, 신자들은 성체를 모시고 공세리 1, 2구 3km 구간을 행렬했다. 공세리본당 성체거동은 1930년대 초 교구에서 최초로 거행됐지만 50년대 중반부터는 열리지 않다가 이번에 부활됐다.
특히 이날 일일문화피정과 성체거동 행사에는 공세리본당에서 35년간 사목하며 성당을 건축하고 의료·교육사업을 선도했던 에밀 드비즈 신부의 손자인 미쉘 드비즈(68)씨와 부인 갸비 드비즈(68)가 자리를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박물관 축복과 성체거동 행사에 맞춰 본당 초청으로 방한한 미쉘 드비즈 부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작은 할아버지가 한국 신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어 감동 깊고 눈물이 날 정도”라며 드비즈 신부님을 향한 한국 신자들의 사랑은 우리 가문에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미쉘 드비즈 부부는 이날 개관한 박물관에 드비즈 신부의 유물 13점을 기증했다.
사진설명
▲공세리성지·성당 박물관 개관식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오른쪽에서 네번째)와 오남한 주임신부(유주교 왼쪽) 등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박물관을 찾은 신자들이 35년간 공세리본당에서 사목한 드비즈 신부의 편지글을 읽고 있다.
▲9월 6일 공세리성지·성당에서 유흥식 주교 주례로 일일문화피정과 박물관 축복식, 성체거동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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