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두 손 모아 기도부터 바칩니다”
가톨릭신문이 창간 81주년을 맞아 지난 5월 11일자부터 연재를 시작한 소설 ‘아! 최양업’이 교회 안팎에서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설가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씨가 집필하고 서양화가 김의규(가브리엘)씨가 삽화를 더한 ‘아! 최양업’은 연재 초기부터 독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40년 문학인생을 걸어온 우리시대의 큰 작가 한수산씨와 한미 양국 화단에서 굵직한 기획전을 열며 주목을 받아 온 화가 김의규씨가 짝지어 작품을 마주 세운 탓이다.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두 거장이 3일 경기도 안양 ‘수리산성지’에서 만났다. 수리산성지는 최양업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이 순교하기 전 약 3년 동안 일가족과 함께 살며 교우촌을 형성한 신앙의 터전이다.
본지는 두 작가가 만나 나눈 대담을 특집으로 꾸몄다.
△김의규(이하 김) : 수리산성지는 녹음이 짙어서 좋습니다. 평일 낮인데도 성지순례를 오신 분들도 많고, 등산객들도 제법 됩니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니 저도 눈에 잘 담아가야겠습니다. 앞으로 삽화를 그려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수산(이하 한) : 수리산성지는 누구라도 잠시 들러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게 벌써 수년 전인데, 올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최양업 신부님의 향기가 묻어나는 성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 한수산 선생님의 글에 그림을 입혀달란 부탁을 받은 게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계절이 두 번째 바뀌어 갑니다. 소설의 소제목이 달라졌고, 횟수도 어느덧 18회를 맞았습니다.
▲한 : 저는 이제야 18회 원고를 연재한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합니다(웃음).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되고 있어서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김 : 소설 ‘아! 최양업’은 선생님께서 지난 10여 년 동안의 장고 끝에 내놓은 작품이라 들었습니다. 손쉬운 허구로 무장한 채, 컴퓨터 냄새 가득한 읽기 쉬운 소설이 주목받는 요즘 세태에서 선생님의 작품이 더욱 눈에 띄는 이유입니다.
▲한 : 소설가로서의 어떤 야심도, 문학적 실험이나 새로운 형식 추구는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저 이번 소설로 인해 최양업 신부님의 삶과 신앙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 더 알려졌으면 합니다. 소설을 시작하며, 제 서재 한쪽 벽에 자그마한 종이를 써 붙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이 소설로 인해 행복하시기를…’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소설을 연재하면서 제가 갖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김 : 저는 선생님의 소설이 신문지면에 실리기 전에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이 세상의 첫 번째 독자입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원고를 받아 읽으면,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첫발을 내딛는 기분입니다. 한 문장씩 읽어 내릴 때마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그러나 환청에서 깨어날 즈음부터는 괴로워집니다. 이 아름다운 글을 어떻게 저만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에 말입니다.
▲한 : 사실 전 김화백의 그림을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덕택에 인연을 맺게 됐죠. 매주 지면을 통해 만나는 그림은 작지만 아주 매력적입니다. 언뜻 보기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 같지만, 오히려 반(半)추상에 가까울 만큼 현대적인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이 내용을 그렸으니 보십시오”가 아닌, 오히려 “이렇게 그려봤습니다. 무엇을 느끼십니까”라고 되묻는 그림입니다. 특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여백의 미가 아름답습니다.
△김 : 선생님의 글과는 궁합이 잘 맞아서인지 작품마다 임팩트가 생깁니다. 그러나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매번 옥동자를 어떻게 순산할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제가 가진 재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늘 두 손 모아 기도부터 바칩니다.
▲한 : 1972년에 처음 문단에 나왔으니, 글쟁이로 살아온 지도 벌써 3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젠 좀 편안하게 글을 쓸 법도 한데, ‘아! 최양업’은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주 집필을 앞두고선 20대 어린 나이의 초보 작가 때로 돌아가곤 합니다. 고민을 거듭하며 고치고 또 고칩니다.
△김 : 초고나 퇴고 과정은 어떻습니까?
▲한 : 매주 초고를 원고지 50매 정도 씁니다. 이어 초고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치고 다듬어요. 30매 정도로 줄어들지요. 마지막으로 최종 점검에 들어갑니다. 중간에 몇 단락은 삭제하기도 하고, 새 내용을 더하기도 합니다. 신문에는 약 23매 정도의 원고가 실립니다.
△김 : 선생님께서는 이번 집필을 위해 중국과 마카오 등 수차례의 해외 취재를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고, 앞으로도 몇 번 더 계획이 있다 들었습니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다음 해외 취재 때는 저도 동행하고 싶습니다.
▲한 : 실명소설인 만큼 ‘최양업’이라는 사람의 삶을 추적해야 하다 보니, 현장 취재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물론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여비도 많이 드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가 새겨진 곳이라면 이 세상 어디라도 찾아가볼 것입니다. 신부님의 체취를 느끼며 이 소설의 얼개를 짜고 살을 붙여나갈 것입니다. 사실, 이번 집필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교회사 연구가 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검증된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때로는 저 혼자 자료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곤 합니다. 혹시라도 제 주관적 판단들이 역사적 사실에 누를 끼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김 : 소설 ‘아! 최양업’이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는 물론 교회 안팎에서 인기몰이를 하다니 기쁘고 뿌듯합니다. 동시에 어깨도 점점 무거워집니다.
▲한 : 가끔씩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느 어르신께서는 신문을 스크랩하기 위해 오랜만에 가위를 다시 들었다고, 또 젊은 친구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소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들입니다(가톨릭신문은 소설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소설을 싣지 않고 있다).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김화백과 저 한수산 둘만의 작품이 아닙니다. 독자 여러분들 모두와 함께 쓴다 생각하시고, 어떤 질책도 조언도 서슴지 말고 전해주십시오. 독자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게 ‘가톨릭신문’을 들고 다니고, 또 어디서든지 ‘아! 최양업’ 면을 펼쳐놓을 수 있도록 저와 김화백이 노력하겠습니다.
△김 : 앞으로도 이 소설이 수많은 신문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최양업 신부님을 영원히 기릴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다.
■소설가 한수산은?
▲196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해빙기의 아침’ 당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 당선, 등단 ▲1973년 경희대 영문과 졸업·한국일보 장편소설 ‘해빙기의 아침’ 입선 ▲1997년~현재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주요 작품으로 소설 ‘해빙기의 아침’, ‘부초’, ‘바다로 간 목마’, ‘욕망의 거리’, ‘거리의 악사’, ‘모래 위의 집’, ‘말 탄 자는 지나가다’, ‘까마귀’ 등과 수필집 ‘젊은 나그네’, ‘이 세상의 모든 아침’,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등
- 오늘의작가상(1977) 녹원문학상(1984) 현대문학상(1991) 등 수상
■화가 김의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Academy of Art University’ 대학원 졸업 ▲ 계원조형예술대학 및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임 ▲대한결핵협회 기금조성전(1985·1986), 안산미협 회원전(1988~90), 서울인테코화랑 개인전(1990), 서울 조선화랑 초대전(1996), 평화화랑 대희년전(2000), 평화화랑 판화초대전(2002), 평화화랑 김의규 크레용전(2008) 등 전시
- 인천 상동성당 벽화 및 천정화, 성 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 14처, 대전가톨릭 대학교 성당 17처, 대구 약목성당 외벽 및 내벽 벽화, 서울 당고개성지 청동 부조 조형물 제작,
- 구상전(1985·1987) 한국불교미술대상전(1985) 한국수채화공모전(1986·1987) San Francisci A.A.U-Spring Show Grand Prize(1991) California Art Magazine-Entry Award(1993) 우경예술상 미술부문(200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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