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이르는 길 형제와 함께 가리
필라델피아를 향하는 차창 밖으로 지팡이를 든 양치기와 양떼가 스쳐간다.
양떼를 몰아가는 목자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을 꼭 닮았다. 반가운 마음에 양치기에게 손을 흔든다. 그도 손을 흔들었다.
요한 묵시록의 일곱 번째 교회,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에서 나는 마음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다. 특별한 형제애로 전혀 꾸중을 받지 않고 오로지 칭찬만을 받았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묵시 3, 8)
무엇 때문에 칭찬을 받았을까. 성경이 설명하듯 필라델피아 교회는 적은 힘을 가졌지만 인내했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켰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가는 힘은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능하다.
희랍어 필로스(사랑)+아델포스(형제) 두 단어는 ‘필라델피아’라는 합성어를 만들어냈다. 필라델피아 교회터에 걸터앉아 잠시나마 묵상을 시작한다.
수도원 흙 마당이 펼쳐진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아이 같은 함박웃음을 지닌 형제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흙 마당에서 우리는 물통축구를 시작한다. 가슴이 뜀박질을 한다. 어서 이 순례의 여정이 끝나자마자 미아리 수도원으로 달려가 형제들과 뒤엉키고 싶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물통을 쫓아 달리고 싶다. 이 순간만큼 우리는 ‘하나’다.
앳되고 나이어린 지청원자도, 흰머리가 펄펄 날리는 고참 수사님들도 물통축구 선수들일 뿐이다. 승리의 골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함께 움직이며 호흡을 같이 한다.
경기 후 마시는 냉수 한잔은 또 어떠랴. 목마른 갈증을 냉수 한잔으로 풀며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흠뻑 젖은 머리를 흔들며 우리는 진정 ‘형제’라는 것을 느끼는 진한 감동의 순간을 만끽한다.
필라델피아 교회 터 안에서 십자가가 새겨진 돌이 눈에 띄었다. 기둥 벽에는 희미하게 프레스코화 흔적이 남아있다. 필라델피아 형제들의 ‘굳은 믿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요한 묵시록 7대교회 순례를 마무리하며, 모든 교회가 나, 아니 우리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김동주 도마 수사, 나는 라오디케이아의 미지근한 신앙을 닮았던 적이 있으며 스미르나처럼 하느님께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 에페소와 같이 초심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오늘날 보이지 않는 다른 우상과 거짓예언자들을 섬기지 않는가에 대한 반성도 했다.
나는 교회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교회다. 우리는 과연 칭찬을 받는 교회일까, 책망을 받는 교회일까.
칭찬을 받은 교회, 필라델피아. 그리스도인들은 이 교회처럼 끈끈한 형제애 안에서 하느님과의 연결고리를 놓아서는 안 된다. 자칫, 길을 잃고 방황하며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자 없이 길 잃은 양떼라고나 할까. 필라델피아에 도착하기 전 차창을 통해 보았던 목자의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필라델피아 교회 터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나 자신과 형제에게 솔직해져 자신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여 훗날 하느님께 영원한 칭찬을 받고 싶다고. 아, 수도원에 있는 나의 형제들이 보고 싶다.
“형제애에 관해서는 누가 여러분에게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에게로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1 테살 4, 9)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묵상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유일하게 칭찬받은 교회, 필라델피아
요한 묵시록에서 유일하게 칭찬을 받은 교회, 필라델피아.
14세기에 주변이 오스만 투르크 군에게 점령당했을 때도 필라델피아만은 그리스도교 도시로 자체 방어를 하더니, 1379년 비잔틴 황제 요한 5세와 오스만 투르크 술탄 무라트 1세간의 정치적 거래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됐다. 이곳에 언제부터 교회가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일찍부터 순교자가 나온 지역이다.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가 순교할 때 필라델피아의 신자 10명도 함께 순교했다고 한다. 현재 교회터로는 비잔틴시대에 지은 사도 요한 성당의 거대한 붉은 벽돌 기둥이 남아있다. 성당터에 그리스 정교도들의 19세기 묘비가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1923년까지 그리스 정교 신자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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