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부러운 사람이 있는데, 소위 ‘낯짝’이 두꺼운 사람이다. 남들 앞에서 부끄럼 없이 자신의 있는 끼를 다 펼쳐 보이는 낯짝이라기보다, “좀 도와주십시오”라는 말을 아주 쉽게 꺼낼 수 있는 낯짝을 말한다.
사회복지 업무를 하다보면 필요한 것은 많은데 공적으로 나오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필요한 자금이나 물품, 인적자원 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도와달라는 말이 쉽게 안 떨어진다. 괜히 뭔가 신세를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 탓이리라.
그러나 성격은 성격이고 일은 일이기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기고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낯짝이 두꺼워지는 것 같다. 누군가 친분이 쌓이고 만만하다 싶으면 불쑥 내뱉는다. “우리 아이 중 자전거가 필요한 친구가 있는데, 한대 사주실래요? 집에 있는 아드님이라 생각하시고.” 괜히 얘기 꺼냈다가 퇴짜 맞으면 어떡하나 싶지만 웬만해서는 거절 못하게 되어있다.
“이번에 일주년 행사하는데 우리 아이들 돼지고기 파티 한 번 해주세요.” “조명이 필요한데….” “음료수가 필요한데….” 어느새 이런 부탁을 하는데 익숙해져 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탁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흔쾌히 승낙하며, “그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이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나누고 싶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런 마음을 느낄 때 나도 일하는 기쁨과 보람이 커진다.
사실 도와달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채우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여건에 있는 분들에게 보탬이 되리라는 최소한의 믿음으로 내어놓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톨릭의 사회복지 활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한다’, ‘믿을만하다’며 신뢰하고 있으니 힘이 더 생긴다.
몇 달 전 자원개발교육에 참여하여 들었던 강의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모금 및 자원개발 활동은, “내가 이 단체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주인의식을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그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주인이 되고 그 사명감이 사람들에게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사명감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더 당당하게 도와달라고 말해야겠다.
요즘 누구와 친분이 쌓이면, ‘그분께 어떤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끈을 이어주고 싶은 뜻에서이다. 그렇게 해서 혈연을 뛰어넘는 더 큰 가족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믿을만한 사람이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할 때, 웬만하면 거절하지 말고 도와주었으면 한다. 또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제가 이러이러한 것은 도울 수 있습니다”라는 적극성을 보이면 더욱 좋겠다.
이형철 신부 (안동교구 사회복지회 사무국장)
그동안 집필해 주신 이형철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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