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갈현시장 골목에 위치한 상가건물 3층.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옥탑방에 살고 있는 이정란(69)·강기백(69) 노 부부가 물 한 컵을 내 놓는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 평생 가족 뒷바라지만 한 칠십 노년에 남은 것은 마약중독자가 된 아들과 병든 남편,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 하나 뿐. 하루라도 빨리 하느님 곁으로 가고 싶다며 이정란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의 40년 결혼생활은 가시밭길이었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은 술 때문에 실직했다. 혼자 힘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건어물상에서 반찬가게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다. 그럼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둘째아들은 본드를 마시며 가출을 일삼는 등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주사는 더욱 심해져만 갔다.
호주로 가면 밥은 안 굶는다기에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온 가족이 함께 이민을 시도, 불법체류자로 15년 동안 숨어 살면서도 갈비를 떼다 양념해 팔고 양봉도 하는 등 아등바등 애를 썼다. 12번 넘게 이사를 하며 쫓겨 다녔다. 결국 지난 2004년 두 아들을 호주에 남겨 둔 채, 두 부부는 강제출국 당했다.
병든 몸에 무일푼으로 돌아온 노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는 없었다. 마약중독자가 된 아들은 소식조차 없다.
남편은 당뇨, 고혈압, 뇌졸증, 허리 협착증으로 활동이 불가하다. 한시 바삐 수술 받고 입원해야 하나 병원비가 없어 5년 째 약만 타 먹는 상황. 당뇨, 녹내장, 백납증 등을 앓고 있는 이씨 또한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돼 월 70만원으로 근근히 생활하지만 그 중 30만원은 월세, 나머지는 대부분은 약값으로 나가 당장 먹을 끼니도 부족하다.
매일 밤 남편과 자식, 끼니 걱정에 잠 못 이룬다는 이씨. 낮 12시가 되자 걸음을 잘 못 걷는 남편을 일으켜 어깨에 메고 근처 사회복지관으로 향한다. 무료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장례를 치러 줄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예수님처럼 죽을 때까지 이 십자가를 지고 갈 겁니다.”
이씨는 오늘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인 작은 체구로 남편을 업고 3층 계단을 오르내린다.
※도움 주실 분 우리은행 702-04-107881 농협 703-01-360446 (주)가톨릭신문사
기사입력일 : 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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