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반 너는 천민 이 무슨 소용있소
124위 중 양반 60명… 여성도 다수
교우간 신분 격차 넘어 ‘평등’ 실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신분별로 알아본다. 신분은 당시 정황에 따라 양반, 중인, 천민, 신원미상 등으로 나눈 결과, 양반이 가장 많았으며 중인, 신원미상, 천민 순이었다.
103위 성인과 같이 양반·중인·상민·천민 출신 등이 골고루 섞여 있지만 주문모 신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평신도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들의 신분과 함께 직업, 교회 내 직분 등을 알아보고, 당시 높았던 신분의 벽을 무너뜨리면서 까지도 진정한 공동체의 삶을 살았던 신앙선조의 모습을 배운다.
▧ 양반(60명, 48.4%)
124위 중 양반은 60명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윤지충 바오로를 포함, 권상연, 원시장, 윤유일, 정산필 등이 양반으로 속한다. 양반의 직업으로는 진사, 학자, 밀사, 지평, 선생, 하급관리, 장교, 좌수 등이 있었으며 여성도 다수 포함돼 있다. 주로 평신도 지도자나 회장, 연락원 등의 교회 내 중책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3위 성인들을 비롯해 한국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대재와 애긍, 기도와 묵상, 영적 독서에 열중함으로써 자기 성화에 노력했다. 교회 내 직분을 가진 이들은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교우들을 가르치고, 냉담자를 권면하고, 가난한 자와 병자를 방문하고 죽음을 앞둔 이에게 대세를 베푸는 등 다양한 선행을 했다.
▧ 중인(33명, 26.6%)
중인은 총 33명으로 주로 감사의 비장, 역관, 밀사, 궁녀, 면장, 의원, 아전, 농부 등이었으며 약업, 무역업, 상업 등에 종사하는 상민도 김조이, 이봉금, 신선복을 비롯해 3명이나 됐다. 교회 내 직분으로는 양반과 마찬가지로 평신도 지도자와 회장, 연락원 등을 맡고 있었다. 특히 중인 가운데 김계완과 구한선은 복사를 섰다는 기록이 있다.
▧ 천민(4명, 3.2%)
이도기, 김천애, 황일광, 김대권 등 124위 중 4명은 천민에 속했다. 직업은 도공, 종 등이었다. 교회 내 직분은 따로 나타나지 않았다. 순교자 중 천민이 적은 이유는 이름이 없었거나 천하게 여겨 당시 아예 집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 교우들은 천민의 사회적 신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을 애덕으로 감싸주었다고 한다. 양반 집에서까지도 그들은 모든 교우들과 똑같이 받아들여졌다. 천민 신분으로 124위 순교자에 속한 황일광은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신분미상(27명, 21.8%)
집계한 신분미상은 124위 중 27명이다. 이 가운데 속한 순교자들은 이름이 파악되지 않아 최, 장, 이, 박, 오 등 성으로만 나타난 사람도 다수였으며 외국인 주문모 신부를 여기에 포함했다. 특징으로는 독신이나 과부 등이 여기에 속해 신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임양미 기자
▶ 124위의 또 다른 특징은?
본지는 지금까지 순교형태와 순교 지역, 신분으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자세히 분석했다.(본지 9월 7일, 14일자 참조) 이밖에도 다양한 124위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연령상으로 12세의 이봉금이 최연소자이고 75세의 김진후가 최고령자다. 103위의 최연소자 유대철 성인과 비교하면 1살이 적고, 78세의 유조이와 비교하면 3살이 적다.
10대는 5명, 20대는 15명, 30대는 21명, 40대는 21명, 50대는 19명, 60대는 11명, 70대는 5명, 나이를 알 수 없는 순교자는 27명으로 30~40대에 대다수가 포함돼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124위 순교자 중에는 ‘베드로’(12명)라는 세례명이 가장 많았던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다음은 ‘바오로’(9명), ‘프란치스코’(9명), ‘야고보’(7명), ‘안드레아’(7명), ‘요한’(6명), ‘바르바라’(5명), ‘마티아’(3명), ‘안토니오’(3명), ‘시몬’(3명), ‘토마스’(3명), ‘마르티노’(3명) 순이다. 요셉, 타데오, 가롤로, 아가타, 바르나바, 마태오, 아우구스티노, 루카, 안나, 아나스티아 등은 각 2명씩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절기, 바야흐로 순교자 성월이다. 자랑스러운 신앙선조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관심을 갖고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혜민 기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