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반응하라
기쁘게 응답하라
순례 일정은 오늘 트로아스를 거쳐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 국경을 넘기로 되어 있었다.
터키와 정이 들어버린 탓일까. 나는 터키의 마지막 순례도시 트로아스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떠올리게 되는 곳, ‘목마’로 유명한 이곳 트로아스를 바오로 사도는 세 번 거쳐 갔다.
사도는 이곳에서 2차 전도여행 때 마케도니아(지금의 유럽인) 사람이 나타나 유럽교회로 와달라고 부탁하는 ‘환시’를 본다.(사도 16, 8~11) 3차 전도여행에서는 트로아스에서 고린토 교회로 심부름 보낸 디도를 기다렸으며(2 고린 2, 13), 동료 제자들을 만나 일주일간 함께 지냈고 에우티코스라는 젊은이를 살리기도 했다.(사도 20, 5~12)
사실, 첫 사건인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절한 바람은 사도 바오로를 자극하고, 그리스도교가 유럽까지 퍼지게 되는 출발점이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사도 16,9)
최근 반가운 전자메일을 한 통 받았다. 저 멀리 남미 파라과이 한인본당 주임신부님으로부터의 초청이다. 한국 성 바오로 수도회에서 올해 겨울 북남미 대림 특강과 도서 선교를 계획 중이라는 소식을 들으셨던 모양이다.
남미 신자들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목말라 있었기에! 바오로 사도의 환시에 나타나 유럽으로 와주기를 바라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절함도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환시든, 환시가 아니든 모든 초청과 부르심에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통해 부르시는 주님의 거룩한 초청에 나는 언제나 ‘네!’하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순례 또한 내게는 사부의 길을 따르는 ‘거룩한 초청’이다. 나는 이 초대에 응답했고, 사부 바오로 사도를 눈으로, 손으로, 귀로, 입으로 느끼고 있다. 이 순례를 하느님과, 바오로 사도와 함께하는 밀월여행이라 하지 않고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기쁘지 않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터키에서 ‘기쁨’에 충만해 사부의 발자취를 따랐다. 사랑한다는 것은 닮아가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지키고 싶은 것이다. 순례는 매순간 나와 사부에게 특별한 비밀을 만들어주고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넌다. 소금기 어린 찝찔한 냄새가 콧등을 때렸다. 터키의 하늘 위로 해가 높이 떴다. 사도 바오로도 나와 함께 이제 배를 타고 떠난다. 바다를 지나 유럽을 가기 위해서 말이다.
배 안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남녀노소 여행객들, 짐 보따리를 든 상인들, 기관사들. 사도 바오로는 바다를 건너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열정으로 충만했던 그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선교를 준비하지는 않았을까. 언어와 문화에 대한 공부, 기쁨과 열정을 새로이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사도를 따라 한국과 미국, 브라질까지 도서선교를 떠나며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삶이 다하는 날까지 노력할 것이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멈췄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 국경까지 바쁘게 움직인다.
이제는 정말 터키와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새로운 곳, 유럽으로의 초대.
나는 새롭게 사부의 초대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옷깃을 바로 세웠다. 터키여, 이제 안녕.
-사부의 길 따르는 ‘거룩한 초청’ 가운데서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트로아스, ‘트로이의 목마’
사도, 환시를 보고 그리스로 향해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시를 보고 곧장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북부 네아폴리스(지금의 까발라) 항구로 갔다. 그는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트로이라는 이름으로 책과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이곳은 현재 상당히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옛날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잡초와 밀밭 여기저기에 성벽, 극장, 경기장, 목욕탕 잔해가 보일뿐이다. 그나마 ‘트로이의 목마’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직접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놓은 목마가 있어 관광객들의 기념촬영장소가 되고 있다.
사진설명
▲터키와 작별하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로 향하는 배 위에서.
▲'트로이의 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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