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이 흘러갔네요. 제가 사제로 감히 사목자의 길을 걷도록 하느님께서 허락하신지가 어언 38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갔으니 길고도 긴 나날들입니다.
더구나 지난 8월에 우리 수원교구에서 31분의 새 사제가 탄생했는데 출생년도를 보니 내가 사제로 수품되던 해가 1970년이니까 그 후로 10년이 지난 80년에 태어난 분들이 주로 이번에 여러 본당으로 어엿한 목자로서 신자들에게 다가왔으니 세월의 흐름이 이다지도 큰가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깐에는 불문에서 이르듯 억겁의 세월같이 느껴지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억겁의 의미가 나에겐 어떻게 느껴지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젠 동료들이 서로 만나면 건강문제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거나 세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면들을 걱정스레 바라보는데서 오는 자기만의 타당함에 대한 얘기들이 주로 되고 있으니 ‘참 나도 그저 그렇구나’하고 상심어린 생각에 젖곤 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곧잘 병원 내 성당에 가서 한동안 기도도 하고 성체조배도 하고 묵상도 제법 하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깊이 있게 느끼려고 하였는데 이젠 병세가 조금 나아지고 있으니까 옛날로 돌아가는 듯하는 자신에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세상이 어떻고 교회가 어떠해야 되고 하는 것에 다시 휘말리는 듯한 부정적 생각에 젖곤 합니다. 환갑을 한참 지나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어 고목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깊은 상념에 젖으면서도 아니야 거목이 되어야지 하고 정신을 차리다 보면 이내 옛날 타성에 젖어 지내기가 일쑤입니다.
원로 신부님들을 가끔씩 뵈올 때마다 한참 건강하실 때엔 세상 걱정에 열을 올리시고 교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들을 한보따리씩 꺼내놓으시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시더니 이젠 연세들이 더 높아 가실수록 말수가 적어지시고 서둘러 자리를 뜨시는 것을 뵈면서 안타깝게 느끼면서도 나도 저렇게 바로 따라가겠구나 하고 기대(!)에 찬 바람을 갖게 됩니다.
이젠 달관의 경지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셨기에 그런 잡다한 세상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시는구나 하고 한편 쇠잔에 대한 안타까움 안에 거목으로서의 모습이 역력히 보여지십니다. 이런 세월의 흐름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혜중의 은혜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때 원로사제들이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더 실감하게 되면서 오늘도 젊은 사제들이 힘차게 사목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지 모릅니다. 전에는 교회의 여러 일들에서 불평불만 하느라 시간을 빼앗겼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그렇게 눈에 거슬리지 않고 그저 내가 잘못한 것들에 대한 죄송함만 생각되는 것은 아마 연륜에서 터득되는 하느님의 큰 은총이 아닌가 합니다.
나도 원로 신부님들처럼 거목이 되어야지 생각을 주제넘게 할 때도 있지만 어찌 감히 그런 경지를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있겠는가? 오늘도 교회 내 소식들을 접하면서 많은 신부들이 수도자들이 그리고 신자들이 큰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따스한 섭리를 느끼곤 합니다. 고목은 그저 고목일 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는 정자의 역할을 하는 거목 아래엔 별별 사람들이 찾아와 쉬어가도 자기의 역할을 편향되게 하지 않는 이런 거목들이 숲을 이룰 때에 우리 교구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나이 되어서야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셨기에 다 좋게만 보이기 시작하였으니 이 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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